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내 인생에 대한 선택을 한 적은 거의 없다.
고등학교도 실업계를 가서 빨리 돈을 벌기 원했던 부모님은 그러기엔 성적이 아까우니 인문계를 가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설득으로 인문계-행정학과-공무원의 순서를 내게 원하셨다. 대학교에 가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행정법이니 무슨 정부론이니 하던걸 듣다가 공무원 시험을 체험 삼아 보자는 과 선배의 말에 시험 응시를 했다.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던 시절이기에 경쟁률이 몇천 대 일이었다. 시험장에 가서 있는데 수능시험 때와는 전혀 다른 공기와 이 시험하나에 목숨을 건듯한 사람들이 가득 있음에 숨이 막혔다. 나는 저들처럼 그러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그 후 영혼 없이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 와서 아르바이트로 했던 공연일에 빠져 대학을 내팽개치고 대학로로 갔다.
대학로에서 일했던 이년 반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였지만 미래가 가장 불투명했기에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가진 시기였다. 꿈보다는 현실을 택하라는 조언에 대학로를 나와 서점에서 일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의 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원하는 선택지는 이제 없어졌다.
제주로 오는 선택은 쏭과 함께 내린 선택이다. 더 이상 서울에서의 회사생활은 살 수 없다는 판단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내려와 지금 8년째 살고 있다.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모아서 집도 마련하고 서울에서 가난하게 자라며 겪어왔던 설움들이 호은에게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나름 행복하다.
결혼 전 했던 내 선택들이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결혼 후의 일들은 오로지 가족을 위한 일이라 더 책임감이 들게 되었다. 왜 가족들에게 올인하는 삶을 사냐는 물음에 이번생은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다는 차승원 님의 인터뷰를 보고 나도 그 선택을 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 또 뭐가 있었는데..'라는 노래 가사가 가끔 마음에 비수처럼 꽂힐 때가 있지만 내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기에 그렇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