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끄적-01. 인격 형성
나는 단수가 아니다.
내 청소년기에 읽어왔던 책 중 절반은 판타지 소설일 것이다.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인터넷도 대학교 들어갈 즈음되어서야 활성화되었으니 그전까지 내 취미는 판타지 소설 읽기였다. 나머지 절반 중 절반은 만화책이었고 청소년 권장도서 같은 책들은 사분에 일이 될까 말까였다.
없는 살림에 자라다 보니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은 책 속 세상이었다. 어른들이 정한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좋은 책들은 재미도 없고 해서 많이 보지 못했지만 구립 도서관에 있는 웬만한 판타지 소설들은 다 봤던 것 같다.
그렇게 봤던 책들 중 지금의 나를 만든 소설은 '드래곤 라자'와 '상실의 시대'이다. 한번 꽂히면 몇 번이라도 다시 보는 성격이다 보니 수십 번을 보다 보면 나를 주인공에 투영하게 된다. 그렇게 투영된 인물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후치'와 '와타나베'이다. 소설 속 시니컬 하지만 정의를 잃지 않는 그들의 말과 행동은 곧 내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십 번의 정독을 통해 어느 페이지를 펴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는 경지에 도달했다. '상실의 시대' 안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러하듯이 '드래곤 라자' 와 '상실의 시대'는 나에게 그렇게 되었다.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라 인정욕구가 심한 나는 드래곤 라자의 위선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
위선? 글쎄. 난 위선이라는 개념이 항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위선의 반대말은 뭐냐? 위악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맹추고, 결국 욕망에 충실하라는 말정도 되겠지.
그 욕망은 인정하면서, 왜 위선을 부리고 싶은 욕망은 인정하지 못하지?
칭찬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어서 착한 일을 한다면 질색할 것인가?
웃기는 소리. 그럼 칭찬이나 존경은 뭐란 말이냐?
그런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
출처- 드래곤라자 양장본 2권 p.262 황소와 마법검 중에서
이 글을 청소년기에 읽고 나서부터는 위선자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게 내 욕망이다.
이 욕망에 충실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