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금강을 지나 백두까지

50코스:통일전망대출입신고소-제진검문소-통일전망대(12.1km)

by 물냉이

해파랑길 50코스는 일부만 걸을 수 있다. 민통선 이북부터는 안보와 안전을 이유로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통선의 경계가 되는 제진검문소까지는 걸어갈 수 있으나 그 다음부터는 차를 이용해야 한다. 해파랑길 50코스 전구간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는 하다. (사)한국의 길과 문화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관광공사, 국방부의 후원을 받아 일 년에 한 번 50코스 전구간을 걷는 행사를 개최한다. 민통선구간을 걷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진 분들에게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전 세계로 확산된 이후에는 50코스를 걷는 행사를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제진검문소 이후의 구간은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에 들러 신고를 하고 차량을 통해 제진검문소를 통과해 통일전망대를 둘러볼 수 있다. 해파랑길의 종점은 DMZ 평화의 길과 만나는 곳으로 2019년 7월부터 고성 A코스와 고성 B코스로 구분하여 탐방을 할 수도 있으나 이 역시 코로나로 현재는 잠시 중단된 상태이다.


사람 없는 길에 생물들이 넘치고(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 - 술산 봉수대 갈림길 - 명파 교차로 - 제진검문소)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는 50코스의 시작점이다. 50코스의 걷기 코스는 통일전망대를 들어가지 않는다면 별도의 출입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다.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의 우측에 있는 옛 7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시작점에 리본이 하나 매어져 있고 300m 정도를 걸을 동안 안내판이 없어 혼란을 겪었다. 명파리 마을로 가는 차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이 길을 걸을 때는 차량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마차진 대공사격장의 안내판이 세워진 곳에 해파랑길의 안내표식이 함께 세워져 있는데 이때부터는 안내 표시만 보고 걸으면 된다. 길가에는 오징어와 명란을 파는 상점이 안내판을 세워놓고 있다. 한때는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던 이곳은 금강산으로 가는 관광객이 끊기면서 점점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로부터 잊혀져가는 곳이 되고 있다.

20210519_124616.jpg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 아래 포장도로를 따라 걸으면 오징어와 명란을 파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상가가 나온다
20210519_130333.jpg 방송에 나온 집도 인적이 끊긴 거리에서 버텨나가는 것이 어려워만 보인다


대공사격장 안내판 앞에서 잠시 눈앞에 보이는 바다를 감상한다. 인적이 끊긴 길가에 누군가 심어 놓은 감자들은 열심히 자라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산으로 가는 입구의 잔디길에는 잡초들이 길을 가로막는다. 참나무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숲길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길은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고 있나 보다. 파도가 높은 겨울이면 이 산길을 따라 걸으며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숲이 짙어지고 파도가 낮아지는 봄이 오면 파도의 소리는 듣기 어려워진다. 그래도 숲 사이 바다가 비치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이면 속삭이듯 작은 파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210519_130402.jpg 감자밭 옆 철조망 너머로 푸른 동해바다가 보인다


20210519_130730.jpg 산길의 입구에 잔디로 꾸며진 탐방로는 산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잡초가 침입해 길을 가로막고 있다
20210519_131009.jpg 낡아버린 안내판은 길의 쓸쓸함을 더해준다
20210519_131016.jpg 나무데크를 따라 잠깐 산길을 오르면 비교적 평탄한 산길이 계속된다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에서 명파리까지는 약 5.5km 정도 된다. 대부분 산길을 따라 걷고 명파 해변을 지나면서 마을 길을 걷게 된다. 산길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숲 그늘을 즐기며 걸으면 된다. 만약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이 길에서 만나는 식물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명파 해변까지 이어지는 이 숲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참나무는 떡갈나무와 신갈나무, 갈참나무 등이 있으며 졸참나무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도 만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데 봄에는 쪽동백나무, 때죽나무, 백선, 은대난초, 천남성, 국수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꽃을 피운다. 산의 능선부보다는 골짜기에서 더 많은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산길의 중간쯤에 술산 봉수대로 가는 샛길과 안내판이 있다. 술산 봉수대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이 봉수대로 가려면 400m를 더 걸어야 한다.

20210519_131542.jpg 명파 해변 안내판을 따라 숲길을 걷는다
20210519_131942.jpg 출입문처럼 산길을 지키고 서 있는 물오리나무
20210519_132119.jpg 우산 나물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작지만 않다면 그 그늘 아래 쉬어 갈 텐데
20210519_144221.jpg 봄철에 꽃을 피우는 은대난초
20210519_145033.jpg 술산 봉수대 안내판


숲길을 빠져나오면 서쪽으로 꽤 많은 가구가 있는 명파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녹음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명파리는 조용한 마을 분위기와 함께 동쪽과 남쪽으로 향한 집들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산길을 내려오면 명파 해변이 보이고 넓은 말 목장이 자리 잡고 있다. 나와 있는 말들이 없어 말 목장 임을 알아보기가 애매하지만 코를 조금만 사용하면 말똥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사람들의 접근이 차단된 명파 해변을 들르지 않고 하천에 놓인 작은 현수교를 건너 명파리로 들어간다. 이 다리의 상류 쪽에는 차량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계치교와 명파 1교가 더 있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길의 안쪽을 따라 제진 검문소를 향해 가면 진입금지 안내판이 나온다. 차량들의 진입을 막는 안내판인데 해파랑길을 걷는 이들을 위한 안내판은 아무것도 없다. 길을 따라가고 있는데 제진 검문소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이르니 부대에서 초병 한 명이 황급히 마스크를 쓰고 달려 나온다. "이곳은 민통선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사병에게 제진 검문소를 묻고 걸어서 갈 수 있냐고 물으니 "제진 검문소는 저기 보이는 곳이고, 도로는 차량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접근하시기 어렵습니다."라고 한다. 제진검문소 입구까지 도로를 따라 올라가 보았지만 걷기 여행자를 위한 안내판은 아무것도 없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 건너편에 7번 국도의 종점을 알리는 비가 세워져 있지만 다가갈 수는 없다. 50코스를 걸어온 이들을 위해 부대의 입구나 도로의 끝 지점에 걷기 여행자 들을 위해 해파랑길 안내판을 세우면 어떨까.

20210519_153918.jpg 명파리 마을 전경
20210519_154343.jpg 명파리 해변가의 말 목장에는 밖으로 나와 있는 말들이 없다.
20210519_154808.jpg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넌다


20210519_155702.jpg 제진 검문소로 가는 길





20210519_155919.jpg 제진 검문소 입구에는 진입금지 안내판이 서있다.
20210519_160421.jpg 제진 검문소 앞으로 가는 길은 걷기 여행자가 걷기에 적합하지 않다

제진 검문소를 돌아 나와 명파리로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명파리에서 고성군으로 나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번만 다니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야 탈 수 있다. 차 시간을 많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에는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로 간다면 온 길을 다시 걸어 나가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버스는 하루에 6번 있는데 오전에는 8시와 9시 30분 2회 있으며, 오후에는 12:40, 2:30, 4:50, 6:10 등 4회 있다. 명파 슈퍼에 들러 음료수를 한 병 사 가게 앞의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20210519_162010.jpg 명파초등학교


20210519_162242.jpg 명파 슈퍼 앞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20210519_164823.jpg 명파리에서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로 가기 위해 탄 마을버스


금강을 지나 백두까지(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 - 제진검문소 - 통일전망대)

해파랑길 50코스 중 제진 검문소 이후는 민통선 북쪽으로 차량을 이용해 DMZ박물관과 통일전망대를 방문할 수 있다.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 보면 DMZ박물관이 먼저 나오며, 두 곳 중 어느 곳이든 마음이 끌리는 곳을 먼저 방문하면 된다. 제진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에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입장료와 주차료를 지불하면 된다. 요즘엔 신고소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방역을 위해 열을 확인하고 손목에 띠를 둘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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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진 검문소에 신고서를 제출하고 북쪽으로 운전을 하며 우선 DMZ 박물관에 들른다. 이곳은 DMZ의 군사적인 여러 자료뿐만 아니라 DMZ 일대에 분포하는 역사문화유적과 사람의 발길이 끊긴 DMZ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의 표본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통해 남북의 대치상황뿐만이 아니라 DMZ의 역사, 문화, 생태적인 중요성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의 한쪽에서 남북한의 삐라를 함께 볼 수 있었다. 남북한의 삐라의 차이는 사진으로 금방 드러난다. 두 세계의 다름이 이렇게 쉽게 구분이 되다니. 수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기원하며 적어 놓은 쪽지들을 따라가며 읽는다. 서로 같은 민족끼리 너무나도 다르게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있는데 하루빨리 서로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절이 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DSC00127.JPG DMZ 박물관에서 마주한 남방한계선 알림판, 그동안 많이 민통선을 출입했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출입금지 안내판은 새롭게 느껴졌다
DSC00140.JPG DMZ 일대의 역사유물들
DSC00156.JPG 다양한 생물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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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삐라 비교
DSC00171.JPG 통일을 기원하며 쓴 수많은 쪽지들


통일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산림청에서 조성해 놓은 통일 숲길을 따라 잠시 걸어본다. 하지만 이 길은 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외세에 의해 갈라진 남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세계의 구성원으로 굳건하게 서있다. 그동안 우리는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경제, 과학, 사회, 문화적으로 성장하였다. 이제 형제가 형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경계의 벽을 넘어 금강과 묘향을 지나 백두로 걷는 날을 꿈 꿔 본다.

50코스의 해파랑길은 절반의 길이다. 하루빨리 나머지 구간들이 회복되어 총석정의 절경을 감상하며, 원산항을 걸어보고 백두와 개마고원의 연봉들을 걸을 수 있기를 통일전망타워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기원한다.


20190428_121911.jpg 통일 숲길
20190428_122404.jpg 적대의 관계를 넘어 화합과 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DSC00026.JPG 통일전망타워
20190428_144649.jpg 멀리 삼일포와 금강으로 향하는 저 도로를 따라 백두까지 걷는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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