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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Oct 15. 2023

누가 그래? 집이 최고라고

난 집에서 벙어리가 돼

기나 긴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TV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엄마는 술에 취하면 볼륨을 높이는 습관이 있었다. 


우리 집은 통금이 있었다. 시간을 어기면 몸에 날 선 회초리 자국이 남기도 했다. 집이 멀었던 나는 늘 친구들보다 먼저 나서야 했다. 어린 마음엔 그게 참 서러웠다. 어떤 날은 통금시간이 되기 전에 집에 도착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일찍 귀가한 탓이다. 창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TV 소리. 들어가 보지 않았음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현관문고리를 잡고 수 없이 고민하다 발걸음을 돌린다. 정처 없이 동네를 배회한다. 몸이 지칠 때쯤 차게 식은 아파트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한숨을 몰아 쉰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나만의 방식이다. 통금 시간이 목전에 다가오면 현관문 앞으로 돌아왔다. 수다쟁이였던 나는 이 문을 여는 순간 벙어리가 된다.


집이 전쟁터인 아이의 밤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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