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램 donggram Oct 15. 2023

숙면

너희 집 침대는 왜 이렇게 잠이 잘 와?

중2, 새 학년이 시작되자마자 짝꿍으로 만났던 친구가 있다. 비슷한 키와 체구, 그리고 집안 환경까지. 마침 집에 가는 길도 같았다. 울다가 웃다가. 집과 학교를 오가는 버스 안은 우리 둘 만의 세상이었다. 


술에 취한 엄마를 피해 집을 뛰쳐나온 적이 있다. 내 생애 첫 가출이었다. 다행히 어디로 갈 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곧장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당연스럽게 택시비를 들고 마중 나온 그 아이를 보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천장을 바라본 채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날이 밝아 온다. 이미 엄마와의 일은 잊은 지 오래다. 우리는 늘 그런 식이였다. 당장 쓰러질 듯 비틀거리다가도 이내 손을 잡고 서로를 지탱했다. 둘이 함께라면 아물지 못할 상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단골 하숙생이 되었다. 마음이 지칠 때면 어김없이 그 집으로 향했다. 어떤 날은 친구네 가족들이 여행을 갔는데, 빈 집에 들어가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참 신기하지. 친구의 집에서 자는 날이면 쉽사리 깨지 않았다. 오래, 그것도 아주 오랜 숙면을 하곤 했다. 어린 나는 "너희 집 침대는 왜 이렇게 잠이 잘 오냐"며 신기해했었고, 그 아이는 "또 저 소리"라며 깔깔거렸다. 이제는 안다. 그건 침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마음 놓고 잠을 청할 수 있음이 귀하다는 걸. 니가 없었다면 내 학창 시절은 온통 눈물로 젖어있었을 거란 걸.


내 휴대폰에 항상 'No.1'이라고 저장되어 있던 아이. 살아 내는 게 버거울 때 늘 옆에 있어주던 너. 글을 써내려 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물 나게 하는 존재. 큰일이다. 이제 콧물까지 나기 시작했다. 고맙다 내 친구 조화니! 

이전 05화 누가 그래? 집이 최고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