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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Oct 17. 2023

여기서부턴 나 혼자 갈게

엄마의 손을 뿌리치던 날

나는 색이 강한 아이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 색은 더 짙어졌다. 엄마와 섞이기 힘들었다. 세상에 던져지기에 이른 나이였지만, 나에겐 진득하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야 이 집에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거리상 너무 가까운 회사는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그때 나에게는 명분이 필요했거든. 엄마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명분.


22살 봄, 원하던 독립을 이뤘다.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 지역의 끝을 우리 집으로 잡고 정확히 반대편 끝자락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엄마도 덜컥 찾아오기 힘들 테지. 신나게 짐을 풀고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밥을 먹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식탁에 불려 가 꾸역꾸역 음식을 삼켜내지 않아도 된다. 웃음기가 없다는 이유로 무슨 일인지 말하라며 심문당하지 않아도 된다. 친구와 큰 소리로 통화할 수 있다. 현관문 손잡이를 부여잡고 들어 갈까 말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곳에 나뿐이라니 꿈만 같았다. 누군가는 엄마가 차려준 밥이 그렇게 생각난다는데, 나는 혼자라는 행복에 겨워 무언가를 그리워할 새도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대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런 상의 없이 서울에 가 면접을 봤다. 합격이다. 하루아침에 "나 다음 달에 서울로 이사간다"고 통보했다. 엄마는 많이 속상한 눈치였다. 꼭 그렇게 멀리 가야 하냐며 슬쩍 붙잡는 손을 대차게 뿌리쳤다.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별 수 없었다. 당신에게서 지독하게도 도망치고 싶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신랑은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연애하던 시절, 우리 엄마에게서 딱 한 번 연락이 왔었단다. 민정이가 내 말은 듣지 않을 것 같다고. 서울로 가지 않게 니가 좀 설득해 줄 수 없겠냐고.


제 몸으로 낳은 자식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붙잡지도 못했을 사람. 불쌍한 내 엄마. 그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알았더라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을 거다. 난 나밖에 모르는 년이니까. 누구처럼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다 스스로를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다정하게 말해줄 걸 그랬나. 엄마, 여기서부턴 나 혼자 가겠다고. 웃으며 돌아 올 그날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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