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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Oct 18. 2023

흉터는 내 친구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

나는 아주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여자의 딸이었다. 등 떠밀려 책상에 앉기 일쑤였고, 석차가 밀렸다는 이유로 성적표가 찢긴 날도 있었다. 집에는 항상 회초리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 길쭉한 막대기는 잘 쓰이다가도 종종 새것이 되어 나타났다. 내 몸에 선을 긋다 부러지곤 했거든. 쓰던 휴대폰은 자주 멈췄다. 혼날 때마다 휴대폰 정지로 벌을 받곤 했으니까. 엄마는 내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꾸 이러면 휴대폰 정지시켜 버린다?"는 말로 협박하는 날이 잦았다. 그녀는 나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 했다. 그 궁금증은 내 서랍을, 가방을, 휴대폰 속을 뒤지는 것으로 해소됐다.


머리가 굵어지니 궁금했다. 도대체 엄마는 나에게 왜 그랬던 걸까. 왜 그리도 나를 가만 두지 못해 안달이었냔 말이다. 내 물음에 엄마는 "그땐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다"고 답했다. 부족한 집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면, 아빠 없는 아이라 손가락질받지 않게 하려면 당신이 더 무서워지는 수밖에 없는 줄 알았단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혼이 요즘만큼 흔하지 않던 그 시절, 남편 없이 어린 자식들을 키워내야 하는 상황은 엄마를 두렵게 했을 것이다. 걱정은 곧 분노라는 가면을 쓰기도 하니까.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끔은 나를 더 어지럽게 했다. 미워만 했으면 간단했을 텐데,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감정들이 떼로 몰려와 나를 둘러싼다. 그녀를 너무 원망하지 말라며 내 발목을 잡는다. 붙잡힌 발목 덕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우두커니 선채로 가슴만 퍽퍽 내려 칠 뿐이다.


분명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가 상처를 아물게 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은 가만히 길을 걷다가도 욱여넣어 두었던 원망이 불쑥 튀어나온다. 차분히 숨을 몰아쉰다. 입술을 꽉 깨물어 본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는 날엔 소리 내 엉엉 울어버린다. 어린 나는 흉터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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