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램 donggram Oct 19. 2023

짐짝

나를 찾아오지 마

있잖아, 난 그냥 우리 아빠 일찍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화니와 학원에 가던 길이었다. 가족 얘기를 하던 중이었나 보다. 그 아이는 늘 그랬듯 내 마음을 추궁하지 않았다. 나는 성인이 된 후로 아빠를 보지 않았다. 분명 내가 선택한 것임에도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슬퍼서도, 보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언젠가 늙고 병든 그가 나를 찾아올까 봐. 그게 두려웠다.


가슴 깊숙이 박혀있던 진심이 입술을 뚫고 나왔다. 연을 끊고 산다 해도 세상 어딘가에 아빠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이었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니 경제적으로 여유로울리 만무할 테지. 그 보잘것없는 손으로 나를 부여잡을까 겁이 난다. 거세게 뿌리치는 상상을 해보지만 개운치 않다. 부모가 자식에게 보탬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짐짝이 되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노인이 된 그를 볼 자신이 없다. 주름지고 움츠러든 뒷모습을 보며 일말의 측은함도 갖고 싶지 않다. 난 아빠를 죽도록 미워해야 하거든. 엄마, 오빠, 나까지. 세 사람의 인생을 난도질한 사람이니까. 화니는 그런 나를 이해했다.


여전히 생각의 변화는 없다. 내가 심보가 뒤틀린 사람이라 그런 걸까. 가끔은 코가 매워지기도 하지만 금세 삼켜낸다. 제 아비가 죽길 바라다니. 누군가 무서운 년이라며 돌을 던진대도 할 말은 없다. 그런 년이 되어서라도 나는 나를 지켜내야 한다. 수 없이 상처 나고 아물기를 반복했던 내 마음 구석에는 굳은살이 배겼다. 돌 따위에 스크래치 날 만큼 여리던 나는 죽었다.

이전 11화 딸 바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