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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Oct 22. 2023

몹쓸 해방감

후련해지고 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야


그녀의 말에 초점을 잃었다. 내게는 꽤 오래전부터 다니던 점집이 있는데 늘 내 것만 보다 처음으로 엄마의 점사를 보러 간 날이었다. 점쟁이는 엄마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들은 후로 내내 한숨을 쉬었다. 남자 하나 잘못 만나 젊음을 몽땅 날렸단다. 고생을 많이 한 탓에 60대에 들어서자마자 온몸이 아파질 것이라고. 어떤 년도를 콕 집으며 그 해에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마음의 준비라니, 정확히 어떤 준비요?" 빙빙 둘러가는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재차 되물었다. "네 엄마..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마음의 정의를 내리기도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점쟁이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 물고 뜯기 바쁘면서, 죽는다니까 눈물은 나나 보네"라며 혀를 찼다. 엄마가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무병장수 한다는 것이 더 이상할 만큼 몸을 혹사시켜 왔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이른 이별은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모든 게 근거 없는 말뿐이다. 점쟁이의 말 한마디에 삶의 대소사를 결정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년간 맞아떨어져 왔던 나의 점괘를 돌아보니 영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데 아무렇지 않을 딸이 어디 있겠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창문에 가만히 기대었다.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을 계기로 좀 더 나은 딸이 되어 보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결심이다. 걸려오는 전화를 피하지 않았다. 문득 떠오를 땐 먼저 안부를 연락을 했다. "아픈덴 없냐, 병원 가 봐, 건강 검진 언제 했냐?"는 잔소리가 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가에 내려갔다. 엄마와 다퉜다. 기억도 안 날 정도의 사소한 일이었다. 늘 그랬듯 각자의 말이 가장 옳다. 누구도 질 생각이 없다.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무슨. 이 관계에는 반전이 없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나지막이 입을 뗐다. "만약에 점쟁이 말대로 엄마가 그때 죽는다면 말이야. 너무 슬프겠지만 한 편으로는 좀 후련할 것 같아. 적어도 더 이상 가족 때문에 힘들 일은 없는 거잖아." 신랑은 그런 나를 보며 아파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런 생각을 하냔다. 가끔 그의 다정한 위로에 내 상처를 실감한다. 그러게 나 정말 힘들었나 보구나. 참았던 설움이 터졌다. 들썩이는 어깨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한 여자의 딸로 살아가는 게 힘에 부친다. 언젠가 찾아 올 몹쓸 해방감을 아무도 모르게 안고 살아간다.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이러는 걸까. 나는 여전히 나쁜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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