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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Oct 19. 2023

딸 바보

영원히 안녕

돈 벌어 올게


어디 가냐고 묻는 나에게 아빠가 했던 말이다. 그는 커다란 배낭에 짐을 잔뜩 챙겨 나갈 채비를 마쳤다. 초등학생 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무슨 마음이었을까. 방으로 달려가 사진 한 장을 꺼내 아빠에게 내밀었다. 내 사진이었다. "잘 다녀오라"며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 한 달, 1년이 넘게 흘러도 아빠의 빈자리는 여전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다. 어쩐지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 같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교무실로 불려 간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등본상 부모님의 거주지가 같지 않은 사유에 대해 알아오라"고 하셨다. 등본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서류상 부모님이 함께 살지 않는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짐작해 왔던 것들이 확신으로 돌아섰다. 나는 이혼 가정의 자녀였다.




내 아빠는 자타공인 딸 바보였다. 우리는 매일 손을 잡고 다녔다. 출근할 때면 신발장에 서서 내게 뽀뽀를 해달라고 입을 쭉 내밀곤 했었다. 귀찮다는 듯 한 번 쪽 하고 나면, 삼세번은 해야 한다며 투정을 부렸다. 그 당시 엄마 따라 여탕에 가는 아들들과는 달리 나는 아빠 따라 남탕에 가는 딸이었다. 작은 바가지 두 개를 엎어 냉탕에서 수영을 하고, 핫바와 바나나 우유를 나눠 먹는 게 우리의 낙이였다. 한 번은 풍선껌을 씹다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아빠의 겨드랑이 털에 껌이 엉켜 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그는 나에게 한 번을 화낸 적이 없다. 우리는 둘 만의 비밀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호랑이 엄마를 둔 내게 그는 대나무 숲이었다.


천사 같은 아빠에게 엄마는 늘 소리를 질렀다. 어린 나는 그런 엄마가 마냥 미웠다. 밤마다 이불로 귀를 틀어막았다. "애들 듣겠다"는 그의 만류에도 그녀는 진정할 줄 몰랐다. 전쟁이 끝나면 아빠는 꼭 방으로 들어와 나를 안아주었다. 이런 날마다 자는 척하며 벌벌 떨고 있는 딸아이를 알았던 거다. 나는 그 다정함을 참 좋아했었다. 크면 꼭 이런 남자와 결혼해야지 생각할 만큼.


조금 더 자란 후에야 알았다. 엄마가 숨이 넘어갈 듯 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녀의 남편이 결혼 후 제대로 돈을 벌어온 적이 거의 없었음을. 그나마 가진 것마저 수 없이 날려왔음을. 어린 자식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얼굴이 나온 사진을 쥐어주던 날도 도박의 굴레 속으로 달려가던 길이였음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차곡차곡 빚을 쌓아주는 남편과 그를 너무 좋아하는 딸. 내 모습을 보며 엄마의 억장은 몇 번이나 무너졌을까. 어린아이를 붙잡고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었을 그 긴 이야기들을 삼키고 삼키며 얼마나 병들었을까. 맨 정신으로 산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더 이상 그와 잘 지낸다는 것은 엄마에 대한 배신과 같았다. 그날 이후로 삶에서 아빠를 지웠다.


내가 가장 사랑했었고, 가장 미워하는 사람. 남자에 대한 불신을 심어준 사람. 잘 가 아빠. 아니? 잘 가지도 마. 걸어가는 그 모든 길이 가시밭이길. 영원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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