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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Oct 17. 2023

엄마도 누군가의 금쪽이였다

엄마는 부모가 원망스럽지 않아?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면 오은영 박사님께서 부모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묻곤 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결핍이 양육 태도로 나타나는 게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상처가 꺼내어지기도 하고, 본인이 가졌던 결핍을 내 자식에게 대물림한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네가 밖에 나가서 잘못하면 부모 욕 먹이는 짓이다'

'그 부모에 그 자식'


어릴 때 참 많이 들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말들이 어느새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다. 나 스스로에게서 단점을 발견할 때면 "이거 우리 엄마 닮아서 그래"라며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러니 자식이 문제 행동을 보일 때마다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수년 전, 지인이 단체 채팅방에 '부모님 탐구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웃으면서 드렸다가 울면서 받는다'는 이 수첩은 부모님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자녀를 낳고 기르며 느꼈던 감정들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구매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든 엄마를 이해해 보고 싶었거든. 어느 명절에 갖고 내려가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수첩은 그다음 명절이 되어서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엄마는 답변을 채워 나가는 게 너무 힘들었단다. 이런 걸 왜 시키냐며 머쓱해하기도 했다. 도저히 같이 읽을 수는 없겠다는 엄마를 뒤로 하고 책장을 넘겼다. 곧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의 꿈이 아나운서였다는 것.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물감, 붓, 예쁜 천을 모으는 걸 좋아했다는 것. 부모의 반대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것. 20대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 부모의 강요로 첫사랑을 버리고 중매결혼을 했다는 것. 지금 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라는 것. 다시 태어나도 당연히 내 엄마가 되겠다는 답변까지.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다는 것이 애틋해서, 부모의 뜻에 수긍하며 살아온 그녀의 젊음이 안쓰러워서, 그럼에도 나를 낳은 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고마워서. 한참을 고민한 듯 썼다 지웠다 반복한 흔적들까지 나를 눈물 나게 했다.




세월이 흘러 엄마는 부모 없는 어른이 되었다. 존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원망스럽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합리적인 말들로 부모를 설득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내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법이 없다.


원했던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결핍이 있던 그녀는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부만큼은 원 없이 시켜주겠다"는 말로 나에게 또 다른 결핍을 심어주었다.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짊어지는 것만큼 아이를 지치게 하는 게 또 있을까. 나는 꽤 영특했음에도 일찍이 학업에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죽도록 싫었던 그녀의 방식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엄마도 엄마가 있었기에. 엄마도 누군가의 금쪽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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