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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Oct 22. 2023

사과는 맛있어

그 마음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사과 다 먹었나?


엄마의 단골 질문이다. 2주 뒤면 더 맛있는 사과가 나오는데 또 사주겠단다. 내가 집을 나갔던 그날부터 그녀는 주기적으로 사과를 보내왔다. 누군가 깎아주지 않으면 잘 먹지 않는데. 게다가 요즘 과일이 금값이라는 말에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의 만류에도 그녀는 보내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네가 애기 때 마트에서 사과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내가 그때 돈이 없어 못 사준게 마음에 한으로 남았잖아. 그래서 사과만 보면 우리 정이 생각이 나네~" 30년 만에 처음 듣는 얘기였다. 돈 한 푼이 아깝던 시절, 한 알에 몇 천 원씩 하는 과일을 사주기 부담스러워 애써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고. 어린 딸의 부탁을 거절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렸을까. 그 옛날 일을 아직도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다니. 그제야 사과를 못 보내 안달인 그녀를 이해하게 됐다.


그러고 보면 엄마에게도 다정한 구석이 많았다. 그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꼬박꼬박 자식들의 아침밥을 차려 주곤 했으니까. 휴대폰 잠금 화면을 해제하면 죽고 못 사는 딸아이의 얼굴이 꽉 차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온통 ‘공주’에게 전화한 내역뿐이다. 겨울이면 유난히 차가운 내 손발을 당신의 옷 속에 넣어 녹여주기도 했었다. 사우나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주말마다 대중목욕탕에 가곤 했었는데, 딸이 있어 부럽다는 아들맘들 앞에서 나를 자랑하며 으쓱해하곤 했다.


그런 엄마는 나에게 늘 후순위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는 아빠가, 조금 커서는 친구들이, 결혼 후에는 신랑이 내게 먼저였으니까. 단 한순간도 그녀를 내 삶의 1순위로 둔 적이 없다. 가여운 내 엄마. 인생을 토막 내 자식들에게 장작을 지펴줬음에도 남은 건 새카만 재뿐이다.


엄마의 삶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자랐더라면 달랐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는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삶의 낭떠러지에서 다 부러져가는 나뭇가지를 붙잡아서라도 우리를 지켜냈다. 그런 엄마를 완전히 뿌리치지 않는 것이 나에게 남은 유일한 염치다.


아직도 이 관계의 종지부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숙제. 나는 오늘도 뜨겁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밀어낸다. 엄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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