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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하는 한국인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한국인

by Sia Aug 21. 2022

학기 시작 전 캠퍼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을 만났다. 그분의 영어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한국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통번역대학원을 나와 현재 미국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시는 분이셨다. 미국 학부생을 대상으로 '스피치'수업도 가르치신다. 정말 스피치 선생답게 훌륭한 스피치를 구사하셨다. 명료한 발음과 탁월한 어휘 선택에 옆 자리에 앉은 미국 학생들조차 그분의 영어 말에 감탄했다. 물론 미국 학생들은 그 한국 학생의 영어 발음보다는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에 더 초점이 갔을 것이다. 


그분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한 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영어 콤플렉스 병이 도발했다. 나도 통번역대학원을 나왔어야 했었나. 어떻게 하면 저렇게 영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영어 책을 읽으면서 맘에 드는 표현을 모아서 외워야 하나. 내 영어 실력은 왜 이모양 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내 영어는 오히려 도태되는 것만 같아. 등등...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20년을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많이 쓴다 한들 내 영어 실력에 만족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내 한국어 실력에는 만족하나? 한국어의 경우에는 만족이나 불만족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그냥 대충 말하고 대충 쓰는 것이 한국어다. 한국에서 누군가가 내 친구에게 '말을 참 조리 있게 잘하시네요'라고 칭찬하는 걸 들었을 때 난 내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자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왜 영어는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전라도나 경상도 억양으로 고급진 어휘로 논리 정연하게 귀에 쏙 쏙 들어오는 표현으로 말하는 사람과 서울 말씨로 기본 어휘만으로 얕은 자신의 논리를 옹호하는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전라도 억양이나 경상도 억양이나 억양이 중요한 게 아닌 듯하다. 물론 억양이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다. 억양도 중요하지만 억양보다 먼저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것은 바로 때에 알맞은 어휘와 표현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나에게 '잘하는 영어'란 우선 영어 원어민식 억양이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잣대인 것 같다. 그리고 영어 원어민도 경탄하는 영어가 두 번째로 큰 잣대이다. 즉, 모든 것이 다 '영어 원어민'잣대에 해당한다. 영어 식민지 사상이 뼛속 깊숙이 박혔다.


이런 영어 원어민 잣대가 내 영어 공부에 있어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기에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부럽고 내 영어 실력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나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전혀 부럽거나 내 한국어 실력이 부끄러워지지 않는 것과 상반된다. 영어 원어민 잣대 말고 다른 잣대들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잣대들이 있을까. 바로 기본 의사소통능력과는 다른 차원의 정확한 영어 표현 능력의 잣대이다.   


한국 영어 공교육은 '의사소통'중심이다.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초중고등학교 영어 수업의 기본 목표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진정 영어 공교육의 목표가 되어야만 하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친엄마는 한글도 잘 모르시고 영어는 아예 까막눈이시다. 이런 엄마와 함께 몇 해전 괌에 갔었는데, 나보다 더 미국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잘하셨다.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의 브런치 글에서 더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https://brunch.co.kr/@92a09f503442417/8)


한국말과 몸짓과 발짓을 활용하면 영어 원어민과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의사소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에 적절하고 정확한 영어 표현'을 사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문맥과 눈치만 있으면 동쪽이라고 말해도 서쪽인 줄 알아듣는다. 이런 경우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정확한 표현 능력은 꽝이다. 영어를 읽고, 말하고, 듣고, 쓸 때 의사소통보다는 상황에 적절하고 정확한 영어 표현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어를 읽을 때 왜 작가가 수많은 표현들 중에 굳이 이 표현을 썼는지, 영어를 말할 때는 굳이 왜 이 단어와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 영어를 들을 때는 이것보다는 저런 표현이 더 간단명료하고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 그리고 영어로 글을 쓸 때 이렇게 공부한 영어 표현을 이용해서 쓰는 것이 내 영어 실력을 진정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기본 의사소통은 언어를 아예 몰라도 가능하다. 인간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물들도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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