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세계,
하루에 31,536,000개의 이쑤시개를 만드는 공장이 있어
오늘은 내 남은 근무일의 첫날
공장장은 태어나는 모든 이쑤시개에게 인사하는 사람
이쑤시개를 발명한 네안데르탈인에게 로열티를 주는 사람
이쑤시개의 새로운 쓸모를 연구하는 사람
몇몇 이쑤시개의 일탈에 시말서를 대신 쓰는 사람
신이시여, 저에게 천조 개의 이쑤시개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겠나이다
달도 만들 수 있겠나이다
아직도 이쑤시개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나무들이 빼곡히 줄 서 있는데
이쑤시개에도 N극과 S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머리 쪽과 발 쪽이 있다는 것을 알아?
앞과 뒤가 있다는 것을 알아?
갇힌 시간,
처음부터 이쑤시개가 꿈이었던 자작나무는 없다
불쏘시개도 노리개도 아닌
식당에서 나오며 무심코 이쑤시개를 집어 드는데 하필 두 개를 집었지
둘 중 하나는 고기 맛도 못 본 채 바닥으로 떨어질 거야
이 군더더기 없는 직립의 몸통에 고깃국물이라도 묻혀 봤으면
멀어지는 쩝쩝 소리를 유언처럼 들으며 생을 마감하는 너
괜찮아, 백 층 높이에서 떨어져도 외상은 없을 너잖아
소라 알맹이를 쏙쏙 뽑아낼 수 있고
구운 김 수십 장을 굳건히 잡아 줄 수 있고
손톱 끝을 푹푹 쑤셔서 없던 죄도 받아 낼 수 있지
이쑤시개공장 공장장이 이쑤시개를 훔친다
공기처럼 안팎을 넘나드는 책갈피를 페이지의 잘못이라 부를까
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달려가는 견인차의 신바람을 ‘가뭄의 경제학’이라 부를까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오리가 홰 탄 격이지
물찌똥의 씨앗을 뿌리는 저 박수무당의 외통수를 배우는 편이 나아요
허릅숭이의 말뚝이던가
모가비의 들메끈이던가
외상값처럼 짖어 대는 묵정밭이다
어근버근 가리 트는 눈먼 가위다
각다귀판 걸태질 소리 야밤에 그득하고
진상 무리의 술판은 그칠 줄을 모르니
빛을 봐 버린 그림자를 도둑이라 부를까
이 극단에로의 전조를 구한말이라 부를까
묶인 주둥이,
이쑤시개공장 공장장이 이쑤시개를 태운다
불타는 공장 안에는 계약직뿐이라서
계약직은 불을 끌 이유가 없지
저 불은 어떤 계약조건으로 들어왔을까
물이 기절하는 기분이 개라면
나는 나보다 작은 휘파람을 맴도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 선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