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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Mar 02. 2024

이륙 전 비행기 사고를 생각하는 것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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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이면 비행기 사고를 생각한다.


그래도 비행기를 1시간 거리부터 (경유) 32시간 거리까지 다양하게 탔다 싶은데도,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기 전까지는 내 특유의 불안증이 어김없이 사고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사실 나는 비행기 사고에 관한 이렇다 할 지식은 없다. 그래서 내가 보통 생각해 낼 수 있는 사고의 종류는 고작해야 추락 정도이다. 비행기는 왜 뜨고 어떻게 착륙하는가에 대한 지식도 없어서, 나에게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건 말 그대로 비행기가 사선으로 뚝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야 뉴스에서 항공기 관련 이런저런 사고를 보여주니 ‘음. 생각보다 더 좆되는 거군.‘ 하며 외면하는 거지, 삿포로로 출발할 때까지도 내 머릿속을 채운 건 막연한 사고의 불안과, 그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뿐이었다.


J의 말을 듣기 전까진 그랬다.


J는 이번 여행을 함께한 친구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J는 ‘이과, 컴퓨터, 개발, 수학’... 뭐 이런 키워드가 착 맞는 사람인데, 어떨 땐 나와 정확히 반대에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J가 이성적인 학문에 더 감각이 있다는 것은, 그가 사고에 관련된 과학 지식을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더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밖을 보며 마치 내가 사고를 잔잔히 걱정하고 있음을 알아챘다는 듯이 J는 이렇게 얘기했다.


그거 알아? 항공기 충돌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에 벨트나 볼펜 같은 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기체가 충돌하는 충격이 너무 세서 그런 것들이 몸, 특히 내장을 관통할 수도 있대.


“…...”


이 순간 내가 떠올린 건 영화 <그래비티>였다.


<그래비티>는 빠른 속도로 지구 주변을 도는 우주 쓰레기로부터 우주비행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는 이야기로, 거기에는 이미 우주 쓰레기와 충돌해 명을 달리 한 우주비행사의 얼굴이 나온다.


그냥 부품의 모양 그대로 머리를 관통한 소품이 나오는데, J의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게 그 비행사의 얼굴이었다. 그 장면은 이렇게 충격적이다.


영화 <그래비티> (2013)


 아마 다음 비행기를 탈 때부터 나는 몸을 관통한 볼펜 따위를 생각하며, 부디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뉴스에서 보여주듯 사고는 생각보다 더 자주, 그리고 아무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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