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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a Ryu Mar 05. 2024

오타루 오타쿠 코리안

윤희와 이츠키가 없는 오타루에서.

오타루라는 동네는 사실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히로코와 이츠키들의 사랑 이야기가 거기 있었고, 윤희가 거기서 잊지 못한 첫사랑을 재회했다.


여담이지만, 사람들은 왜 이렇게 <러브레터>의 ‘오겡키데스까’를 좋아할까? 아마도 이 장면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고, 쉬운 대사에 배우가 이쁘고... 배경도 이쁘니까...


이 영화는 이상하게 일본보다도 한국 관객들이 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개봉한 지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장면을 패러디하는 매체가 많다.


영화 <러브레터> (1996)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인기에 내 맘대로 한 가지 이유를 대자면 지금은 이승에 존재하지 않는, 연모하던 누군가를 외쳐 부르는 행위가 우리나라의 '초혼(招魂)'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초혼은 '부를 초, 넋 혼'이라는 한자 그대로 저승의 혼을 부르는 한국의 전통 장례 의식의 한 과정이다. '전통' 의식이니만큼 나는 이런 의식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많은 예술작품에서 이 의식을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에서 초혼을 비롯한 전통 장례 의식을 볼 수 있다. 또는 김소월의 시 '초혼'으로도 나는 이 의식을 알게 됐는데, 왠지 모르게 지붕 위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영영 떠난 사람을 마지막으로 불러본다는 컨셉 자체가 내 머릿속에 각인됐다.


초혼과 장례 의식이 사실은 감정의 분출을 조금 자제하며, 생각보다 점잖게 이루어지는 (혹은 이루어져야 하는) 의식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러브레터>의 외침과 초혼을 생각하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울먹하고, 목소리가 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맑고, 죽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애처롭게 부르는 그 이미지.


어쩌면 그냥 이런 청순한 느낌이 좋았던 건지도. 영화 <엽기적인 그녀> (2001)

하여튼 나는 <러브레터>를 떠올리면 ‘오겡키데스까’도 좋지만, 오타루의 그 엄청난 눈이 더 생각이 난다. 주인공이 아픈데 눈이 너무 많이 와 도저히 차로는 갈 수 없어 할아버지의 등을 빌려서만 의원을 방문해야 하는 그런 막막한 상황. 아마 이 장면을 눈여겨보게 된 건 어느 프로그램에서 본 영화에 관한 코멘터리 때문이었을 거다.


눈이라는 게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자연 앞에서 인간은 생사가 오가는데도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그 경외감과 압도되는 감정에 관해 설명한 비평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나는 <러브레터>를 떠올리면, 눈앞에 소리치는 그 마음보다도 눈길 사이로 업혀가는 여인과 초로의 남자가 더 눈에 밟힌다.


오타루. 는 아니고 비에이의 눈.




내가 간 오타루에는 볼 게 별로 없었다. 윤희도, 이츠키도 없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를 12월에 갔는데, 알아본 바로는 이쯤이면 홋카이도에는 이미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눈구경 못할 것을 걱정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구는 이미 너무 더워졌고, 그래서 홋카이도 여행 내내 밟은 땅은 눈이 애매하게 내리다 녹아 척척하기만 한 진흙탕이었다.


오타루 오르골당의 증기 시계탑 앞에서.

그러니 나의 오타루에도 눈이 많지는 않았다. 대신 윤희가 쥰과 만난 그 운하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심지어 단체 관광 그룹과 시간대가 겹쳐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오기까지 했다. 왜냐면 나는 사람이 싫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타루가 은근히 전통을 오래 유지하는 맛있는 초밥집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면서도 오타루는 초밥을, 일본이니만큼 최고의 초밥을 먹고 오자는 결심을 세웠다. '최고의'라는 수식어가 나온 순간부터 이 계획은 실패를 앞두고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사람이 몰릴 것을 고려해 '너무 유명하지도 않고, 후기가 적당히 좋은 곳'을 골라 두었다. 평일과 주말의 생활 패턴이 바뀌는 여행자들이 으레 간과하고 마는 휴무일도 다 고려한 결정이었다. 자근자근 골목을 올라 마주한 초밥집의 문에는 '본일(本日)'이라는 한자로 시작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르골당의 귀여운 오르골들.

여기서 고백을 한다. 나는 한자를 배운 세대가 아니다. ㅅㅂ. 그러니까 나는 신문 읽어달라는 할아버지한테 혼나는 기철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본일? 일본도 아니고 본일? 먼 소리임.


그것은 한자 '금일(今日)'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렇군. 예상은 했다. (못 함) 어쨌든 파파고에 뜬 해석본은 대충 이랬다.


오늘은 단체 손님 예약이 있어
이용이 어렵습니다.


ㅋㅋ..


그래서 구글 지도를 검색했다. 정말 가고 싶은 데를 못 가니 기분이 좀 싱거워졌다. 그래서 우리는 코를 후비적거리며 '적당히 리뷰 괜찮은 곳'으로 대충 골랐는데, 한 시간쯤 뒤에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오타루로 가는 길의 바다와 진한 크림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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