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 거야, 데드리프트

데드핑의 부활

by 실버라이닝

오늘은 분명 등 하는 날인데


등은 뒤에 두고

또 바닥에 있는 바벨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데드리프트가 좋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랬다.


스쿼트보다 데드리프트가 더 재밌는 거다.

등에 짊어지고 일어나는 건 무서운데

데드는 그냥 들면 되는 것 같아 그랬을까.


적어도 깔려서 허리가 똑 부러질 것 같지도 않고

아니다 싶으면 손을 풀어버리면 될 것 같고


축구보다 배드민턴이 쉽게 느껴졌던 것처럼,

발보다는 손으로 하는 게 낫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하체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그 느낌이 좋은 거다.

바닥에서 무언가 뽑혀 올라오는 짜릿한 감각.


바벨.

그건 그냥 쇳덩이가 아니라

누군가 꽂아둔 검.


아무나 뽑을 수 없고,

오늘의 나만 뽑을 수 있는 무게.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갈 때

빛나며 나를 바라보는 바벨의 실버 라인.


헬스장 한가운데 꽂혀 있는

나만의 엑스칼리버.


무게를 올려 성공한 날이면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훨씬 강해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데드핑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의 경고를 받는다.


몸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마음만 파워리프터였던 꼬마 데드핑은

결국 허리를 다치고 만다.


숨을 쉴 때마다 아파서

결국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데

침 맞으면서도

‘이거 맞고 데드 더 잘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한다.


“당분간 데드 금지요.”


정신을 못 차린 데드핑은

트레이너 선생님께 데드금지를 당하지만


다른 헬스장에서 몰래 하다가

귀신같이 알아차린 샘께 또 혼나기를 반복한다.


그렇다.

헬스장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은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운동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창 재미를 붙였는데

아파서 못 하니까 죽을 맛이었다.


주변엔 왜 또 그렇게

데드리프트를 쉽게 당기는 사람들이 많은지.


스쿼트 100을 가볍게 밀어 올리는 헬스 친구는

데드도 장바구니 들듯 쓱 들어버린다.

뭐지? 나랑 다른 바벨인가.


나는 80kg이 최고 기록인데.


끙 소리 한 번 없이,

아주 우아하게 100을 뽑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졌다.

너무 부럽다.


차라리 얼굴에 실핏줄 터지면서 힘들게 들면

위로라도 되는데

왜 그렇게 우아한 건데.


운동이 아니라

공연을 하네.


나도 100을 뽑고 싶다.


숫자가 주는 위엄.

두 자리와 세 자리의 차이는

계급이다.


그렇게 데드서민은

경건한 마음으로 귀족 계급이 데드리프트를

멋지게 성공하는 영상을 시청한다.


하루 종일.


눈 뜨자마자,

밥 먹으면서,

샤워하면서,

근무 중 쉬는 시간,

자기 전까지.


계속 보다 보면

갑자기 내가 들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릴스는 어찌나 마음을 잘도 아는지

데드리프트 잘하는 법에 대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개구리 점프하듯 준비해라.

줄다리기를 해라.

바지를 입듯이 당겨라.

레그프레스 하듯 밀어라.


수많은 비법을 제치고

어느 날 내 마음에 들어온 문장 하나.


데드리프트는

지구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뭐야. 개 멋있다.


그래.


당기자.


지구를.



얼마 전에는 파운 하는 동생과

스모 데드리프트를 다시 해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예전에 했던 기억을 더듬어 당기는데

내가 들던 무게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


기분이

너무 좋잖아.

다 필요 없고 80이 가볍게 느껴지는 그 기분이면

충분하잖아.


며칠 동안 운동의 시작은 스모데드.


데드핑의 부활.


뽑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

엑스칼리버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나저나 아는 트레이너 샘이

스모 데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아, 스모데드로 성공했다고요?

스모… 스모였구나. 난 또 뭐라고…”


왜.


스모로 들면 안 되냐고.


지구는

컨벤셔널로만 끌어당겨야 하냐고.


지구 입장은 들어본 적 있느냐고.


스모 데드리프터는 억울하다.


스모면 어떤가.


난 오늘도

스모로 지구를 당길 테다.



오늘 내 알통에는…

귀족계급이 성공한 100kg 영상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