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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안 Jul 13. 2022

학부모님들, 이제 곧 담임이 바뀝니다.

기간제 교사의 교단일기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마땅하나, 아이들을 통해 서면으로 하직 인사를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2학기 담임 000 선생님의 복직원에 따라, 방학일을 끝으로 저의 계약이 종료됩니다. 계약직 교사라고 밝히는 것 대신 학업이나 육아 등 다른 핑계를 대어볼까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담임 선생님이 자신들보다 다른 일을 우선으로 선택했다는 상처를 면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선생님의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옳고 그름을 가려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덧없을지라도…’

끝이 정해져 있고, 다른 담임 선생님들보다 기간이 짧다 하여 거리를 두고 있기에는 무척 예쁘고 귀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언어를 도구로 삶과 만날 수 있는 제 교과를 좋아합니다. 각박해졌다 하더라도, 순수한 배움의 열정이 있고 ‘선함’이 인정받는 학교라는 공간과 제도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교사가 주는 ‘내리사랑’보다도, 더욱 맹목적으로 교사를 사랑해줄 줄 아는 아이들을 흠뻑 사랑합니다.


아이들과 짧게 만났다 헤어지며, 미처 맺지 못한 과제는 2학기 담임 선생님께 공백 없이 잘 전달드리겠습니다. 남은 계약기간 동안 아이들을 가까이서 관찰한 장점들을 반영하여, 여러 명의 지원서 중에 우리 반 아이들의 지원서가 옥석처럼 빛날 수 있도록, 생활기록부 기재에 힘쓰겠습니다.


2학기가 되면 아이들이 저의 흔적을 지우길 바랍니다. 담임 선생님과  지내지 못하는 고등학교 생활이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애정이 남아 있다고 해서, 아이들의 서운한 마음이 걱정된다고 해서, 아이들 일에 미련을 두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시간이 오래 지나도 아이들이 원한다면, 다시 찾아올  있는 자리를 기쁘게 마련해두겠습니다.


끝으로 함께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깊이 공감하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은 학부모님들과의 시간도 무척 소중했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그간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2022.7. 000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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