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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유인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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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Oct 30. 2022

한강

강변 달리기

언제부턴가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적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것은 신기하리만치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앉은자리에서 네다섯 시간 동안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나는 한껏 상기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냐하면 몸이 너무나 뻐근하고 약간 허기가 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닥에서 폼롤러로  공들여 스트레칭을 하고 나는 장을 보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평소 마트에 가면 보통 식자재를 그다지 많이 사지 않았지만 마치 월동을 대비하기 위해서 비상식량을 구비해두는 것처럼 양손 가득히 먹을거리를 사 가지고 힘겹게 집으로 들고 갔다. 그리고 각종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차곡히 넣어두고 간단히 손질한 대파를 소분했다. 쌀밥에 토마토 달걀 볶음을 얹어서 먹었다. 뜨거운 드립 커피를 한 잔 내렸다. 그것을 들고서 책상에 앉아서 또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늦은 저녁까지 글을 적은 뒤에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뜨거운 샤워를 하고 바로 잠들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곧장 커피를 내렸고 글을 적었다. 그리고 어제와 똑같이 밥을 먹고 뜨거운 커피와 초코비스킷을 함께 곁들여 먹었다.


그제야 내가 무언가 점점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앞으로 훨씬 더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할 것이다. 나는 내가 만족할 때까지 작업을 해야만 한다. 어느새 글을 계속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약간 헛구역질이 나왔다.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했다. 그렇게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먹고 마시고 걷고 자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냉장고는 텅 비어버렸고 꾸준히 하던 운동마저 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누군가에게 이것을 보여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용주에게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 천천히 읽어달라는 말을 전했다. 

나는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기분을 한 채로 강변으로 러닝을 뛰러 나갔다. 초겨울 아침의 공기는 상당히 쌀쌀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다지 춥지 않았다. 강변에서는 메말라있던 마음이 불어난 강물처럼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나는 강변에서 달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빗 속에서 혼자서 텅 빈 트랙을 질주할 때도 좋았다. 그리고 남녀노소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들이 붐빌 때도 좋았다. 특히 건강한 여성들이 달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출렁이는 가슴과 탄탄한 허벅지를 보는 것은 매번 질리지 않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고독한 타지에서의 무미건조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시들어버린 청년에게 작은 불꽃이 되살아나게 해 주었다. 밤에는 수많은 가로등이 사람들을 환하게 비추었다. 매번 똑같은 코스를 달린다. 문득 가로등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똑같은 주변 풍경이었지만 그 순간에 무언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그것은 어두운 그림자 속의 풍경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그렇게 느꼈다. 경주에 살았을 때도 지금처럼 밤에 달리고 있었는데 문득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등 주변에 보이는 빛과 나무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 일상의 큰 기쁨이었다. 그것은 황홀한 기분마저 가져다주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잎이 풍성한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살랑한 바람에 맞추어 저마다 각기 다른 춤을 추었다. 나는 전력질주를 한 후에 숨을 고르기 위해서 천천히 걸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 있는 나무들은 상대적으로 작고 앙상한 느낌이지만 그것마저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게다가 한강의 야경은 매우 아름답다. 강을 가로질러 즐비한 고층건물의 불빛들이 화려하다. 다만 그것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강물의 윤슬이 아름다워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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