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단상)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펜은 칼보다 강하다 #글쓰기가 말하는것 보다 어려운 이유

by 미스틱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말을 쉽게 해왔다는 뜻일 수 있다. 말을 함부로 했다는 말일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극도로 천천히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잘못을 수정할 수 있으며 오해를 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이 있는 세계에 글도 함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래서 나는 육체적으로는 말하기가, 정신적으로는 글쓰기가 더 편하다. 나는 내 글이 말에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해왔고 내 말이 글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해왔다. 세상에 뿌려져 회수할 수 없게 되는 문장만큼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한 치의 의혹도 없이 믿는다. 나는 세상의 펜들에 난자당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에서 -


글을 읽다 저는 말을 함부로 해왔다는 문장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말의 속성을 고려할 때 말이라는 것은 마치 자율신경조직처럼 조건반사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입에서 내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끔은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적이 있었을 겁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자의 말대로 말이 글에 가까워진다면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미필적 고의와 같은 실수는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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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을 쓰는 시간이 늘면서 소소하지만 깨닫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면의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프고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다 보면 어느새 고통이 옅어지면서 문제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 속에서 '다들 이런 게 사는 거지'라며 속으로는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 위로하겠지만 사실은 채울 수 없는 공허함에 몸부림칠 때도 나만의 삶의 속도와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머릿속에 산재해 있던 생각의 파편 조각들을 조금씩 모아서 정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쓰다 보면 어느새 조각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유와 관찰의 힘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예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소소한 일상의 풍경과 주변 사물, 사람들의 미묘한 변화까지도 포착해 관찰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이면에 담겨있는 의미를 사유하고,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산로 주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와 새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걸음을 멈추고 바람에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며,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멍 때리기도 합니다. 인생의 맛을 느끼는 오감이 더 풍부해진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허겁지겁 음식을 삼켰다면 지금은 천천히 씹고 음미하면서 진정한 맛도 즐거움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저의 초기 글들은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잘 쓰려는 욕심, 감정만 앞서 그냥 의식의 흐름에 맡겨 쓴 글이 대부분입니다. 문제는 다시 퇴고 과정을 거치자니 처음부터 다시 쓰는 편이 나을 정도란 생각마저 들어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나 말고 읽은 독자도 없고, 부끄러움의 역사도 어쩌면 내 글쓰기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쓰다 보니 또 글이 길어졌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고미숙 작가의 말을 빌리면 좋은 글은 모든 사람이 읽기 좋도록 쉬운 언어로 쓰여야 하며, 자신만의 오리지낼러티(originaltiy, 독창성)가 있어야 하며, 스토리의 차서(次序)와 차이(差異)가 있어야 하고, 독자와의 공감과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하며, 맥락과 행간의 의미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고, 리듬감 있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도 저는 또 글을 썼다 지웠다는 반복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언젠가는 손가락이 알아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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