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밍 Sep 19. 2023

그림책 심리상담사란?

나를 소개합니다.

 그림책을 처음 만난 것은 결혼도 하기 전이었다. 당시 석사논문을 쓰다 자꾸 엎어지던 20대의 나는 작고 초라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큰 좌절도 아니었지만 자존감이 툭 떨어진 그 시기에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이래저래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쌓여있던 부모님과의 갈등도 당연히 실패의 순간 다시금 심화되며 힘겹던 나의 마음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한국독서치료학회의 문을 두드렸다.


2년 과정의 문학, 독서치료,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나를 이해하고자 했었다. 그때는 이게 업이 될 줄은 정말 몰랐고 철저히 내담자의 마음이었다. 나 어디가 잘못된 거죠? 나는 왜 행복할 수가 없을까요? 이런 물음에 답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찾아간 그곳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니 부모님에 대한 분노감이 올라갔던 시절이었다. 엄마한테 대놓고 "괜히 심리학은 공부해서 불평불만만 늘었다"라고 구박을 받기도 했다.


이때 가장 강렬하게 만났던 도구가 ‘그림책’이었다. 나는 그림책을 보고 자란 세대도 아니고, 딱히 그림책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몰랐으니까... 그런데 어느 독서치료 수업에서 숀 텐, 사노 요코, 다비드 칼리, 존 버닝햄과 같은 작가님들의 그림책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을 하고, 치료에 쓸 수 있는 그림책을 찾아 계획서를 짜는 과제를 한답시고 대형 서점에 가서 닥치는 대로 그림책을 읽어보며 그림책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산지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좋은 그림책이 정말 많이 나왔고 나의 책장은 내 그림책으로 점점 채워졌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도 많이 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연을 맺었다가 나중에는 엄마가 치유받고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흐름들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계속 내담자의 마음으로 살아갔다. 그림책을 보고 눈물짓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하지만 감히 다른 사람에게 추천이나 선물 이상의 무언가를 할 생각은 못 했다.


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그러나 임신한 줄 모르고) 긴 시간이 흐르고 문학치료 박사 과정에 붙게 된다. 그렇게 석사 전공을 본업으로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며 아이를 키우는 30대 중후반을 보낸다. 한 대학교에서 오전에는 수업을 하고, 다른 대학으로 옮겨서 오후에는 수업을 듣고... 선생님이자 학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다.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이었으니까. 지나고 난 소감? 지금 돌이켜보니 좀 위태위태해 보인다. 마음이 힘들면 그 감정에 빠지지 않게 스스로를 아주 힘들게 굴리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매우 생산적인 회피일수도...


그렇게 양가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은 채, 아이를 둘 키우고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대학원 박사 과정을 들어 결국 수료를 한다. 대신, 둘째는 8개월부터 어린이집과 협력하여 키웠다. 나에게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항상 가장 고마운 육아 파트너였다. 남편이 아닌 이유는 나중에 나오리라. 분명 이 과정에서 놓친 것도 많을 것이고 실제로 아쉬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그런 거 아니겠나. 놓친 부분을 보고 안타까워할지, 얻은 것들을 저 시간이 헛되지 않게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과정들의 집합.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의 그림책 모임을 열게 된다. 독서치료+하브루타+문학치료, 그림책과 관련해 배워온 것을 밑바탕으로 1년 정도 지역 카페에서 모은 10여 명의 엄마들과 매주 줌으로 그림책 하브루타를 진행했다. 그렇게 50여 권의 그림책을 직접 고르고, 질문을 만들어서 토론하는 이런 시간이 가진 치유와 성장의 효과를 1년을 통해 절감하게 되며 서서히 준비되어 그림책 치료를 업으로 하게 되었다. 지금은 아동발달센터에서 아이들과 그림책 놀이 치료로 만나고 있고, 의뢰가 들어오면 초등학교 위클래스에 파견을 나가기도 하며 줌이나 도서관에서 엄마들과도 그림책 테라피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게 되니 정말 행복하다. 특히 좋은 것이 있으면 누군가와 같이 나누고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일은 정말 딱이다. 내담자가 들여다보고 싶은 주제에 맞는 그림책을 선정하여 같이 읽고, 각 장면들의 의미를 나에게 질문하고 나를 대입하여 읽다 보면 어느새 그 그림책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답을 찾고 있는! 그렇게 통찰을 얻었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의 삶과, 그 삶을 보여주는 그림책 소개를 통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지난날들도 한 번 비추어 보면 좋겠다. 한 사람의 역사를 훑고 나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조금은 더 명확하게 보일 거라고 믿는다.      

삶의 굽이굽이에서 흥얼대는 노래가 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이상은 <언젠가는>     


반갑습니다. 돌아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은 삶 속에서, 그림책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림책 심리상담사 밍밍(힐픽북)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