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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Sep 22. 2023

출생의 비밀을 찾습니다

‘나도 가족일까?’ by 다비드 칼리/마르코 소마

이제 워밍업은 된 것 같고! 진짜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조금은 부끄럽고 불편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엄마는 나 안 사랑해!! 내 엄마 아니야."

"나 다른 엄마한테 갈 거야!"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자, 화가 잔뜩 난 아이가 투정처럼 던지는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아이는 그저 나 때문에 속상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 텐데 나는 혹여 저 말이 진심일까 가슴이 철렁. 애써 쿨하게 반응하지만, 이런 아이의 흔한 투정에 상처받는 이유는 이것이 어린 시절 나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전래동화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새엄마. 동화 속 새엄마는 하나같이 본인이 낳은 딸에게는 절절매고, 그렇지 않은 딸에게는 세상 표독스럽다. 그 지점이 오히려 희망적인 상상의 여지가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 혹시 계모? 그럼, 언젠가 내 진짜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오지 않을까? 이왕이면 이 집보다는 부자지 않을까? 내 방도 생기고 나에게 친절하겠지? 이렇게 빨간 머리 앤 뺨치게 뻗어가는 상상의 나래, 이거 나만 겪은 일은 아니겠지?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재생되는 장면들 속에는 이런 장면이 꼭 있다. 어쩌다 친구네 집에 놀러라도 갔다 오면, ‘저 엄마가 내 엄마라면...’, ‘내가 저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들을 하며 멍하니, 시끄럽지만 적막한 방 안에 누워 부러운 마음으로 상상하는 초등학생 나.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쌍벽을 이루며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상승(꼭 신분이 아니더라도 처지에 대해서도?)에 관한 욕망이 투영된 이야기 구조일까? 그리하여 옛이야기부터 시작된 ‘내 출신이 알고 보니 으리으리하다. 나 이렇게 시시할 리가 없어. 아니라고? 그럼 그런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올라가면 되지 않을까?’가 현대 드라마나 영화에도 여전히 단골로 등장하는 설정으로 살아남아 있는 거겠지.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러한 ‘출생의 비밀’을 이렇게 정의했다. 아이가 자신을 제재하는 부모에게 반감을 품고 반항 의식과 함께 ‘자신은 특별하다’고 망상하는 유아기의 환상에서 기인한다고. 이러한 무의식은 수많은 설화, 특히 신화에 투영되어 미천한 신분의 주인공이 사실 엄청난 태생(용이나 신의 아들이라든지, 왕이 버린 자식이라든지...)이라는 출생의 비밀 모티프를 만들어 냈지.


가족 안에서 외롭던 이 시절,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캐릭터를 고른다면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었을까? 못났다고 놀림당하고 구박받지만, 나중에는 가장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백조일 수도 있다는 꿈과, 지금 내 가족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딘가에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희망. 그런데! 백조들에게로 돌아간 미운 오리는 과연 행복했을까? 자라난 환경이 달라 겪는 문화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많고 많은 출생의 비밀 그림책 중 다비드 칼리의 ‘나도 가족일까?’를 골라 보았다.

 이 그림책은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한 부부가 늪 근처에서 비늘이 있는 아이를 발견하며 시작된다. 다른 아이들보다 눈이 크고 비늘이 있는 모리스는 부부와 같이 살며 평범하게 자라난다.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시간들이 흐르던 어느 날 바람에 실려 온 늪의 냄새를 맡고 보리스는 늪에 머물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묻는다. "엄마, 왜 저를 데려오셨어요?", "왜 그냥 늪에 두지 않았어요?" 사랑해서라는 답이 충분치 않았던 걸까? 그날 이후로 혼란스러운 보리스는 자꾸 목이 마르다.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삶이야?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야?’ 결국 자기도 모르게 걷고 걷다가 늪으로 간 보리스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세상은 늪이야. 나의 냄새는 늪의 냄새야. 피부에 비늘이 있으니, 나처럼 비늘을 가진 사람들과 살아야 해.’ 보리스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것에 즐거워하는 진짜 가족을 찾은 모리스는 그렇게 물고기들과 함께 지내는 쪽을 선택한다. 보리스의 부모님은 보리스를 잊지 않고 종종 늪에 쪽지를 매달아 놓고 가셨다. "제발 집으로 돌아오렴. " 이런 내용이 아니라 "네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우리도 행복하단다. "라는 쪽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리스는 새로운 진짜 가족도 먹는 것, 말하는 방식, 웃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집이 그리워진다. 그리운 냄새, 행복한 순간들이 떠오르고 그렇게 누구와도 다른  자신은 가족을 가질 수 없나 보다 하며 방황하던 보리스는 길을 잃는다. 그런 그의 눈에 작은 쪽지가 들어 있는 수많은 병들이 보인다. 모든 쪽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네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우리도 행복하단다." 보리스의 부모는 비늘이 있건 없건, 닮았든 닮지 않았든 개의치 않고 보리스를 사랑했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하기 때문에 비슷해지는 게 아닐까? 보리스는 생각을 하며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보리스처럼 가족의 사랑을 훅 느낀 순간이 떠오르면 좋으련만 일단은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만 너무 다른 존재 같아서 소외감을 느낀 시간들이 떠오른다. 대표적으로 우리 가족은 저 빼고 모두가 이공계인데 저만 100% 문과. 굉장히 감수성이 메마른 사람들 사이에서 촉촉하게 살아가는 것은 이 물고기 인간처럼 늘 목이 마른 일이었다. MBTI가 유행하며 T와 F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슬픔을 나누면?” 는 너무 당연히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누가 봐도 T인 친구는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둘이 된다.’라고 생각해서 정말 신기했다. 아마도 우리 가족은 다 T가 아니었을까? 감정을 무척 나누고 싶었던 와는 달리 세상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반응이었다. 뭐, 가족이라고 똑같으란 법도 없고(나 4명이 같이 산다고 상상해 봐도 끔찍하지 않나?) 어느 집이나 이런 부분은 있었겠지만 정말 내가 이상한 건가, 나만 없으면 평범한 가족인 건가... 혼란스러웠던 시간이 있었다. 글쎄.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하고 맞는 성향의 사람이 하나 있었다면 해결이 될 힘듦이었을지는. 가족 구성원의 역동이 워낙 복합적이고, 상황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보니... 결론은 에게 다른 친모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게 무사히 자라나 멋진 물갈퀴를 뽐내는 오리가 되었다.


언젠가 첫째 6~7살쯤 '엄마가 죽으면?'이라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 천진하게 "그럼 새엄마가 오겠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엄마가 대체 가능하다고? 충격을 받고 알고 있는 상담 선생님께 이 상황을 여쭈었더니 아이에게 엄마가 너무 커서 엄마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어 대체할 새엄마를 불러오는 것에 가까울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마도 성인 여성들에 대한 상이 매우 좋은 것도 한몫했을 거다. 는 주변의 좋은 엄마들에게 ‘엄마 역할’을 배웠고, 우리 첫째는 그래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다른 엄마를 떠올릴 수 있었던 걸까?


이런 걸 분석하면서도 아이가 혹시 내가 엄마라서 어린 시절 나처럼 불행한 건 아닌가 불안이 자꾸만 생겨나는 건 내 아이가 아니라 내 안의 이 물고기 아이 때문일 것이다.

대체 자신들을 떠난 아이에게 “네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우리도 행복하단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런 사랑은 어디에 가면 받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네. 배 아파서 낳아야만 위대한 모성이고 진짜 사랑인 건 아니다. 우리의 보리스가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같은 종이라도 얼마나 다른지 모른단다?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 가족은 내 마음의 희로애락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돋보기 같아. 가족이 존재의 시작과 끝 같은 느낌에 휘둘리기 쉽지만, 그저 너는 늪을 좋아하는 그곳에서 태어난 부모님의 사랑받는 아이로 그렇게 너의 삶을 살기를...


아들, 이런 새엄마라면 보내줄게. 아! 이거네?!! 나야 나. 내가 이런 ‘너만 행복하다면 보내줄게’ 엄마인데 나보다 나은 새엄마 찾을 수 있겠니?


꽉 꽉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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