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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Sep 23. 2023

당연하고, 초라했던 흔한 이야기

‘나는 둘째입니다’ by 정윤정

당신은 몇째입니까?


한동안 내가 겪은 모든 힘듦의 시작이 자라온 환경, 특히 출생순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했었다. 시대마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보편적인 이야기인데 개개인에게는 한 맺힌 서사인 경우들이 있지 않은가. 부모님 세대의 대표적인 서사가 전후 시대의 가난, (특히 여성의) 교육의 기회 박탈이었다면 80년대의 서사는 상당수가 여전히 남아있던 남아선호, 남녀차별이었다고 본다. (+IMF)


사실 몇째였어도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 운동의 잔재로 정서보다는 밥벌이가 중했던 시절에 행복감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는 그 유명한 딸딸 아들집 둘째 딸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고 남동생이 4대 독자였지요. 대충 그림이 나오는 그런 전형적인.


비단 둘째뿐만이 아니라 첫째도 막내도 출생순위의 영향을 받아 성격이 형성된다고 주장한 심리학자는 아들러였다. 요즘은 외동인 집도 많고, 이전처럼 출생순위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K-장녀라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일반적인 특성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아들러는 출생순위가 심리적 순위라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자녀가 10살 터울이라면, 첫째와 막내의 특성이 아니라 각각 외동의 특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맏이, 중간(둘째), 막내, 독자를 이렇게 설명한다.


 맏이는 관심과 주목, 사랑을 듬뿍 받다가 동생이 태어나면 왕좌에서 물러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폐위당한 왕’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래서 사랑을 빼앗긴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부모의 양육 태도, 나이차이, 성별 등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부모가 동생을 안고 들어와 첫째에게 소개할 때의 마음을 여기에 비유하곤 하는데 남편이 "오늘부터 같이 살 내 두 번째 아내야." 하면서 다른 여자 손을 잡고 들어오는 기분을 흔히 비유하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동생을 소개해주는 단계를 세심하게 진행하곤 다.

첫째의 대표적인 특성은 의젓하고 열심히 일하며 앞에 나서려고 하는 것이라는데 주변의 맏이들이 떠오르나? 앞에서 말했듯, 다양한 변수가 있다 보니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첫째답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대체로 책임감이 있고 리더십이 있는 듬직한 타입이었던 것 같다.


둘째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관심을 나누어 가지고 경쟁 구도에 처한다. 나이 차이가 적은 경우는 첫째가 실패한 것을 달성해서 칭찬을 받고자 하는 부분도 있고, 첫째와 일반적으로 반대인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삶을 불공평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고, ‘불쌍한 나’라는 태도를 가질 수 있으며 문제아가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초등학생 때, 집에 있는 엄마의 자습서, 문제집을 뒤져 이 구절을 읽곤 했었다.(엄마가 중학교 가정 선생님이셨다.) 간혹 저 형제 서열에 따른 성격이 소개된 한 페이지가 실려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묘하게 저 페이지를 보며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원래 그런 거다. 세상에 많은 둘째도 ‘불쌍한 나’로 살아가고 있고, 삐뚤어지고 있을 수 있다. 나 정도면 잘 버티고 있는 거다.' 이렇게 문제아가 될 수 있다는 말조차 위로가 된(잘 자랐다, 나 자신아!)


둘째였던 는 ‘나는 둘째입니다’라는 그림책을 서점에서 발견한 20대 후반의 어느 날, 홀린 듯 계산하고 안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둘째도 앞서 가는 첫째와 뒤에서 쫓아오는 셋째 사이에서 힘들 때도 있지만, 그렇게 달리다 보면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다. 사회적 관심과 공동체감이 전제되는 협력적인 행동을 훈련받을 상황이  많기에 협동심과 자립심을 자연스럽게 발달시킬 수 있고 그래서 삶의 고난들에서 쉽게 길을 찾을 수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도 물론 있다. 세상 모든 일이 양면이 있듯이... 그러나 삶의 많은 순간에 내가 막내였다면... 과 같은 생각들이 떠오르긴 했었음을 고백한다.


막내인 경우는 언제나 귀여운 존재,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폐위의 충격 또한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도움을 요청하고, 노력 없이 누리는 성취와 특권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회적 맥락에서 자라나기에 사회적 능력을 획득하기 쉬운 환경에서 자란다. 모든 형제를 이기려고 노력하거나 원조와 보살핌을 받는 아기로 남거나, 두 가지 노선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막내 느낌이 난다'하는 친구들의 무해하고 해맑은 순수함이 떠오른다.


외동은 폐위 경험을 제외하고는 맏이의 특성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나누거나 또래와 협력하는 건 부족할 수 있으나 어른들을 다루는 방법은 능숙할 수 있다고 다. 처음부터 계속해서 부모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차지하기 때문에 의존할 수 있고 항상 무대의 중앙에 있기를 원한다.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이 위치에 도전을 받을 때 불공평하다 느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삶에서 관심의 중심이 아닐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평한 것과 같이 아들러의 경우는 오히려 독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요즘은 외동 친구들이 많아서, 또래 관계의 부족함을 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 아는 외동들도 비록 미성숙할 땐 이런 면모가 있었을지언정(그리고 누구나 미숙한 시기는 있으니) 사회생활을 하며 부족한 지점들을 잘 메꾸어 훌륭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육아에 대한 관심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풍성해져서 딱 이렇게 자랄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형제자매 관계를 살펴보면 꽤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형적인 환경에서 전형적으로 서열에 맡는 육아를 받은 나는 느낀다.

정윤정 작가님의 ‘나는 둘째입니다’를 펴면 작가 소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선생님은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언니, 동생에게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있었대요. 그게 모두 둘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라고 생각했대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책을 만들었어요. “ 이 그림책에서 언니는 아빠 품을, 남동생은 엄마 품을 차지하고 있다. 나를 안아줄 양육자의 부재.


오늘도 엄마의 쇼핑백에는 다른 가족들 것만 있고 내 것은 없다. 언니 거를 물려받으면 되니까. 새로 사 온 스케치북, 오늘도 동생 차지. 언니는 예쁘게 묶은 머리인데 나는 늘 바가지 머리. 둘째는 집 안에서 외톨이다. 그래도 사진첩을 보니 언니, 동생과 잘 뭉쳐서 논 날도...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뭔가 해준 날도 있다. 그렇게 아빠와 언니, 엄마와 동생 사이에 누워 끝이 나는 이 그림책을 보면 지금도 고개가 마구 끄덕여지며 나의 몫이었던 목 빠진 인형들, 무릎 뚫어진 거 꿰맨 바지, 너덜너덜한 문제집들이 떠오른다. 


심지어 이렇게 위안을 삼으며 끝나는 결론이 답답하고 미화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내 자리에 대한 확신을 가족들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뒤지고 찾아서, 그리고 끼워 맞춰서 붙어 있어야 하는? 심지어 가족사진에 다 나온 것도 있겠지만 나 빼고 언니랑 동생만 데리고 놀러 간 사진을 발견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셋이라서 어려운 순간이 생기면 빠지는 것이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면... 그냥 너무 불공평한 것이 맞다. 좀 원망해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엄마로서의 나를 돌아본다.  심지어 성별이 다른 남매를 키우는데 그렇게 둘째는 뭘 안 사주네? 첫째의 옷, 마침 둘째가 치마를 싫어해서. 첫째가 읽던 책, 너무 많아서 굳이 새로 살 필요가 없네. 장난감? 그래도 둘째가 정말 원하는 건 간간히 사주지만 기본적으로 이미 집에 많다. 아직까지는 크게 불만이 없는 둘째인데, 언젠가 저처럼 이런 억울함을 느낄까? 역시 이것은 둘째의 숙명인데 가 예민한 걸까?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하면 둘 낳아 보라고, 차별 안 하나 보자며 저주처럼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엄마의 말도 떠오른다. 그래서 내 사전에 셋은 없었다. 솔직히 낳고 키우고의 자신보다는 아이들을(특히 가운데 둘째를) 상처 주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그런 나를 용서할 자신은 더 없어서. 지금은 그저 나의 최선으로 첫째에게는 많은 관심을, 둘째에게는 사실 너를 제일 사랑한다는 속삭임을 주고 있다.


는 둘째라 이 그림책을 만났다.


자, 이 글을 보시는 전국의 첫째, 셋째, 넷째, 막내분들 ‘나는 첫째입니다’와 ‘나는 셋째/넷째....입니다’, ‘나는 외동입니다’ 그림책 내주세요. 여러분의 경험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 자체가 크나큰 위로일 수 있답니다. 작가님이 이제는 정말 자유롭고 행복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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