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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Sep 24. 2023

내 삶이 언제부터 힘들었던 것 같냐고?

‘마음이 아플까 봐’ by 올리버 제퍼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차별에 대해 항의하는 나를 대하는 엄마의 자세는 이러하였다.

"원래 집집마다 그렇게 구박받는 애들 하나씩 있는 건데, 다들 잘만 커서 잘 사는데 너는 왜 이렇게 애가 부정적이니?"


어릴 때는 몰랐다. 우리 집이 세상의 전부이니까. 이때의 가 타고난 의 성향이라면 엄마의 말에 의하면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굉장히 상냥하고 친절한, 아기들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댄다. 이때는 엄마 말처럼, 매사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엄마한테 부당하게 혼날 때마다 반항은 못 하겠고 조용히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를 부르다가 등짝 한 대 더 맞곤 했던 시간들이었다. 내면의 불길로 가족들과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할 때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신 말이 "어릴 땐 상냥하고 참하더니 왜 이렇게 자랐니?"였고 는 늘 속으로 '엄마가 이렇게 키웠잖아요...'라고 생각했다.


조금 자라서 세상을 알게 될 때쯤, 아이를 부당하게 대하지 않는 친구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밥을 했다. 집안일이 몫이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우리를 키워 주시던 할머니께서 이때부터 쭈욱 편찮으셨기에. 원래는 언니랑 번갈아가며 해야 했는데, 언니는 나 몰라라 나가 버리거나 방에 들어가 자 버리고... 성격이 강하던 언니는 건드리지 않는 할머니는 잡았다. 쌀을 씻으며 억울한 마음에 "오늘 언니가 하는 날인데..."라고 한 마디 했다고 말대꾸한다는 욕과 함께 날아온 포크, 그릇, 칼(식칼은 아니었고 돈가스 칼 같은...). 할머니는 오른쪽이 마비되셨고, 몸이 마음대로 안 되니 원래도 강하셨던 성격이 점점 괴팍해지셨다. 그 나이 때의 평범한 아이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불만이 쌓이며 시니컬함이 하늘을 찌르게 커지고 있을 즈음, 엄마가 이 상황을 정리해 다.


"너 딸이라고 할머니가 지우랬는데 낳아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 말은 그로부터 한참을 의 정체성으로 가슴 깊이 자리한다. 사춘기 시절 내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거듭 새기던 말이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화가 난 것도, 너무한다는 반응을 한 것도 아니었고 깨달음을 얻은, 내 인생의 퍼즐 조각이 맞춰진 기분이었다. 아,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그런 존재였구나. 이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조금 미안해진다. 나만은 아니라고 해줬어야 했는데 너무 쉽게 수긍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때는 정말 저 말이 앞에서 말한 그 수많은 '왜 나한테만...'이라는 질문을 완벽히 해결해 주는 한 마디였다. 20대에 용기를 내어 다시 꺼내서 풀어 보려고 했던 저 한 마디는 다시 2차 가해를 남기고 와 가족의 골이 더 깊어지게 한다만...


이때의 를 생각하면 이 그림책이 떠오른다. ‘마음이 아플까 봐’...

이 그림책은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한 소녀를 보여준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생각들로 기쁨에 겨운 소녀의 곁에는 늘 할아버지가 계신데, 어느 날 할아버지는 사라진다. 할아버지의 빈 의자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던 소녀는 잠깐만 마음을 빈 병에 넣어두기로 한다. '마음이 아플까 봐' 마음을 빼니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았지만 모든 게 달라졌다. 더 이상 세상에 어떤 열정이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병이 무거워지고 불편했지만 안전했으니 괜찮았다.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작은 아이를 만났을 때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던 마음이 없는 소녀는 문득 마음을 꺼내고 싶어 진다. 그런데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해도 나오지 않던 마음을 작은 아이가 꺼내 다(이 아이는 지나가는 소녀일 뿐일까... 주인공의 아이일까, 내면 아이일까?). 이 모든 게 시작된 할아버지의 의자에서 소녀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고, 병은 비었다.


 나에게도 날이었던 것 같다. 감정을 꽁꽁 잠가 버린, 유리병에 넣어 버린 순간이. 원래 는 정말 많이 울었던 아이였다. 다만, 아무리 억울하고 속상해도 앞에서는 울지 않았고, 화장실에 가서 소리 죽여 울거나 방 이불 안에서 울곤 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방으로 뛰쳐 들어갈 때 쫓아와서 방문을 굳이 열고 계속 혼내는 엄마가 어찌나 밉던지.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즈음부터 는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감정을 병에 넣어버린 소녀처럼. 이 모든, 사랑받을 수 없는 삶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팠으니까. 그렇게 는 방어기제로 감정을 느끼지 않는 편을 선택했고, 사람의 마음에 대해 알려주고 다루는 수업을 하는 요즘도 가끔 머리로 배워서 출력하는 AI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쩌겠나. 꽉 잠그면 언젠가 펑 터질 것 같아서 아주 조금씩 졸졸 새어 나오게 이야기하며 산다. 그래서 늘 슬픈 이야기를 웃으면서 담담하게 잘한다고 신기하다는 말을 듣지만.


그리고 쭈욱, 는 ‘차별’에 민감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며 도대체 그놈의 ‘조건 없는 사랑’, ‘존재 그 자체로 귀함’이 무엇인지 찾아 헤매게 된다. 덧붙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의식까지 생겼다고 하면 너무 오버일까? 


이럴 시간에 딸에게 오빠의 것들을 물려받게 하는 것은 괜찮은 건지 다시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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