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환상 도서관 #7
[1] 전송과 버퍼링
2139년 캘리포니아, 산호세, 거대 지하 연구 시설.
“치이익―.”
기압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강화 유리 덮개가 열렸다.
차가운 백색 증기가 훅 끼쳐왔다.
시야가 흐릿했다.
동공이 수축하며 눈앞의 데이터를 읽어내려 애썼지만,
망막에 맺히는 것은 흐릿한 회색 천장뿐이었다.
“제임스, 시간이 됐어.”
나는 척수 뒤쪽에 연결된 굵은 케이블이 뽑혀 나가는 감각에 헐떡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컨시어스(Conscious), 메모리 사인 정상. 메모리 로쓰 최소화 체크.
1982년 한국 거주 중인 “이선호”와 동기화율 97%. 의식 전송 준비 완료.”
내 시야 구석, 증강현실 인터페이스에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임무 브리핑과 안내 사항이 떠올랐다.
[TARGET: 1982. ROK. ON-GI-AM Psychiatric Hospital]
[OBJECTIVE: Blue Sea Ore (청해광상) 채굴 주체 규명, 데이터 회수 및 세라 구출]
“이번에는 단순 시공간 이동이 아닌
‘시공간 의식 이동’을 시도할 거야.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은 기술이지만,
이번 임무를 위해 특별히 정보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어.
너의 의식을 과거에 살고 있는 ‘이선호’라는 사람의 의식 속에 덧씌우는 거야.
쉽게 말하자면, 이선호란 사람의 의식을 잠재우고
너의 의식이 이선호의 의식과 몸을 잠시 동안 지배하는 거라 할 수 있지.
그렇지만, ‘버퍼링’이라는 부작용이 존재할 수…”
유리벽 너머, 흰 가운을 걸친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가 시공간 의식 이동에 대해 안내해 준 이번 임무의 총괄 책임자였다.
그녀는 홀로그램 패널을 열심히 조작하고 있었다.
“전송 개시.”
[SYSTEM: Neural Uploading...]
[WARNING: Temporal Dislocation Imminent.]
콰아앙―!
끓어오르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의식이 마치 0과 1의 데이터 조각으로 분해되어
시공의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Con… scio…usnes… s… se… ttled ] [Memo...ry... Lo...ss...]
“... 헉!”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냄새였다.
강렬한 락스 냄새.
눅눅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먼지와 배설물이 미묘하게 섞인 지린내.
벽에 달려 있는 커다란 달력을 통해 지금이 어느 시간대인지 알 수 있었다.
1982년 6월…
“야 이씨, 이선호! 똑바로 안 잡아?!”
누군가의 고함이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시야가 미친 듯이 점멸했다.
마치 수신이 잘 잡히지 않는 구형 브라운관 TV처럼 세상이 지직거렸다.
[Visual... Sen...sor... Da...maged...] [Da...ta... Recov...ery... 32%...]
“이선호! 머저리같이 서 있지 말고 이쪽 다리 잡으라고!”
누군가 내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나는 휘청거리며 벽을 짚었다.
손바닥에 닿는 축축하고 차가운 타일의 감촉.
그 순간, 내 입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멋대로 움직였다.
“아, 네... 네! 죄송합니다, 수간호사님!”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왜 사과를 하고 있지?
내 의식(제임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기존 의식(이선호)에서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비굴한 반응은 제임스를 적잖이 당황시켰다.
이선호의 의식은 잠들어 있었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습관적 처세와 반응이 제임스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초록색 페인트가 거칠게 칠해진 복도.
형광등 하나가 껌벅거리며 발작하듯 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 아래,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바닥에 엎드린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그들이 오고 있어! 벽 속에서 검은 고양이가 울고 있다고!”
환자의 눈은 뒤집혀 흰자위만 번뜩였다.
입가에는 허연 거품이 물려 있었다.
건장한 남자 직원 두 명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고,
캡을 쓴 간호사가 주사기를 든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치지직―. 시야의 절반이 노이즈로 뒤덮였다.
환자의 얼굴 위로 붉은색 텍스트가 겹쳐 보였다.
[Target... Ana...ly...sis...]
[Identity: Unknown... Sub...ject...]
[Recom...mend...ation: Eli...mi...nate...]
죽여? 아니, 제압해? 내 오른손이 본능적으로 환자의 경동맥을 노리고 뻗어 나갔다.
특수 요원으로 활동하며 익히 쓴 살인 격투술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선호의 반사적 반응이 내 신경망을 지배했다.
‘아니야, 그러면 안 돼. 잘리면 안 돼. 월급은 받아야지, 뭐 하는 거야?!’
내 손은 엉거주춤하게 환자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궤도를 바꿨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나약한 팔뚝이었다.
젠장, 이 육체는 너무나도 형편없었다.
근육량 부족, 영양 불균형, 만성 피로.
“으아아아악! 놈들이 내 골수를 파먹으려 해!
망태 할아버지가 말했어! 우주가 터질 거라고!”
환자의 비명이 복도를 울렸다.
주삿바늘이 놈의 엉덩이에 꽂혔다.
환자의 몸이 파드득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후우... 미친놈. 오늘따라 힘이 장사네.”
주사를 놓은 수간호사가 땀을 닦으며 나를 쏘아봤다.
“이선호. 너 자꾸 정신 놓고 다닐래? 원장님 아시면 넌 바로 시말서야. 알았어?”
“...시말... 서...?”
내 입에서 단어가 씹혀 나왔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삐이이이이―.
[Memo...ry... Sync... Er...ror...]
[Mis...sion... Obj...ective... Not... Found...]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임무가 생각이 안 난다.
큰일이다.
아니, 나는 이선호잖아?
온기암 정신병원의 야간 담당 간호사.
월세가 대충 몇 개월 밀려 있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아니야. 나는 제임스야.
나는… 모종의 임무를 위해 과거 한국에 사는
한 사람의 의식으로 강제 착륙한 거야.
지금 이선호의 기억이 밀려오고 반사적 행동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건
‘시공간 의식 이동’의 후유증, 일명 ‘버퍼링 현상’.
이는 새로 들어온 제임스의 의식과 이선호의 의식 간 서열 정리가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부작용이다.
최대한 빨리 제임스의 기억을 되살려야 임무 착수가 가능하다.
치직. 치지직.
복도 끝, 철창 쳐진 창문 너머로 빗줄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것은 비 내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탁. 탁. 탁. 무언가 작고 딱딱한 것이 끊임없이 떨어지는 소리.
나는 소리에 반응하며 축축하게 젖은 복도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1982년.
한국 인천 흑묘산 일대.
온기암 정신병원.
잠들어 있던 이선호의 기억 일부가 올라왔다.
[2] 온기암 정신병원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온기암 정신병원의 공기는 물기를 머금은 솜이불처럼 금세 무거워졌다.
복도 천장 구석에는 검푸른 곰팡이가 지도처럼 번져 있었고,
바닥의 타일은 항상 끈적거렸다.
마치 건물이 땀을 흘리는 것 같았다.
“야 인마, 이선호. 커피 안 타 오냐?”
스테이션 안쪽,
낡은 가죽 소파에 파묻힌 수간호사 박 씨가 소리쳤다.
그는 누렇게 뜬 런닝셔츠 바람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매캐한 솔담배 연기가 환풍기조차 돌아가지 않는 좁은 공간에 자욱했다.
[Threat... Analysis...]
[Target: Park. Male. 40s. Obesity. Hostile.]
[Action: Neck Snap available within 0.8s.]
제임스에게 저 비대한 목덜미를 꺾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경동맥을 누르고 기도만 확보하면 소리 없이 처리할 수 있다.
살의가 손끝으로 몰렸다.
하지만 또다시 제임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아, 예! 예! 바로 드리겠습니다!”
이선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경박하고 비굴했다.
허리는 자동으로 90도로 굽혀졌고,
손은 달달 떨며 인스턴트커피 봉지를 뜯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만해. 고개 숙이지 마.’
제임스가 이성을 붙잡고 속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선호의 무의식 속에서 두려움이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는 이선호의 의식적인 반응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올라오는 일상 속 패턴화된 감정이었다.
박 씨는 내가 타 온 커피를 후루룩 마시며,
끈적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서울 명문대 나왔다고 하는 놈이 커피 타는 솜씨는 영 별로란 말이야. 쯧.”
“죄송합니다! 다음엔 물 조절 더 잘하겠습니다!”
[Heart Rate: Elevated. Cortisol Level: High.] [Emotion: Fear... Anxious..]
곧, 이선호 의식으로부터 수치심과 불안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나(제임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고통을 통해 이선호의 감정에게 잠식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100년 전의 사람들은 분노가 기본 감정 상태인 건가.
아니면 여기만 특히 이상한 건가? ’
나는 도망치듯 스테이션을 빠져나와 복도를 순찰했다.
밤 10시.
환자들은 대부분 약에 취해 잠들었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병원의 밤은 낮보다 시끄러웠다.
복도 끝, 304호실 앞.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과현미 환자였다.
그녀는 벽을 보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녀 앞에는 다 터진 솜인형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때가 꼬질꼬질하게 탄 인형들은 각각 눈이 하나 없거나,
팔이 뜯겨나가 있었다.
“미영아, 밥 먹어야지...
이건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야.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서...”
과현미는 허공에 숟가락질을 하며 가운데
인형의 입에 무언가를 넣어주는 시늉을 했다.
“... 환자분. 이제 주무실 시간입니다.”
내가 다가가자 과현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퀭한 눈구멍 속에 초점 없는 동공이 박혀 있었다.
“쉿. 선생님. 우리 미영이가 자요.
미래에서 온 미영이는 잠이 많거든요.”
그녀는 오른쪽 인형을 쓰다듬었다.
'미래'를 상징하는 인형이었다.
그런데 그 인형의 목에는 푸른 형광색 크레파스로 그은 듯한 선명한 자국이 있었다.
마치 목을 그은 것처럼.
[Anomaly... Detected.]
[Subject's delusion aligns with future event probability: 0.001%...]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병실 문을 닫았다.
복도 중앙 휴게실에서는 더욱 참신한 환자들의 기행이 벌어지고 있었다.
‘망태 할아버지’라는 별명의 노인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는 거대한 망태기가 놓여 있었다.
그는 망태기에서 테니스 공 하나를 꺼내 들었다.
형광색 털이 다 빠져 반들반들해진 낡은 공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것을 성스러운 물건인 양, 소중하게 받쳐 들고 있었다.
“쓱... 싹... 쓱... 싹...”
할아버지는 더러운 걸레 조각으로 공을 닦았다.
단순히 먼지를 닦는 게 아니었다.
공의 표면을 어루만지고,
입김을 불어 윤기를 내고,
귀에 갖다 대고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진지하다 못해 숭고했다.
“할아버지, 그만하고 들어가시죠.”
내가 다가가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백내장이 낀 뿌연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보았다.
“이봐, 간호사 양반. 이 소리가 안 들려?”
“무슨 소리요?”
“[SR-1951818] 차원의 우주가 우는 소리 말이야.”
그는 닦고 있던 테니스 공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퀴퀴한 고무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각각의 공 안에는 저마다의 우주가 담겨있어.
서럽게 울고 있는 우주를 내가 닦고 있는 거야.
내가 안 닦으면,
이 우주는 온통 시뻘건 원한으로 가득 차 숨도 못 쉬게 될 거라고!“
할아버지는 다시 공을 닦기 시작했다.
그의 망태기 안에는 수백 개의 테니스 공이 잠자고 있었다.
저 많은 공을 어디서 주워 온 걸까.
그리고 저 많은 ‘우주’를 언제 다 닦으려는 걸까.
치지직.
또다시 시야에 노이즈가 꼈다.
할아버지가 닦고 있는 테니스 공 위로 붉은색 좌표 데이터가 겹쳐 보였다.
[Object: Tennis Ball.]
[Composition: Rubber, Wool... Unknown Particle Trace.]
[Radiation Warning: Low Level.]
방사능?
테니스 공에서?
흠...
“이선호! 너 또 거기서 노닥거려?
빨리 와서 이것 좀 옮겨!”
박 씨의 고함이 다시 들려왔다.
망태 할아버지는 그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곧 내가 갈게.
모든 우주의 평화를 위해...
직접 그곳으로 날아갈 거라고.”
나는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할아버지의 굽은 등 뒤로,
닦아놓은 수십 개의 테니스 공들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기묘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언뜻 보면 마치 부화 직전의 알처럼 보였다.
‘이곳은 정신 병원인데 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환자들을 재우지 않는 거지?'
[System Stability: 48%...]
[Contacting Agent 409... Identify Target...]
머릿속의 기계음이 다시금 날카롭게 울렸다.
나는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이라도 끼얹어야 했다.
이선호의 의식을 누르고 제임스의 의식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신호인 걸까.
임무를 빨리 알아내야 한다.
[3] 실마리
탁.
검은 돌이 바둑판 위에 놓였다.
건조하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휴게실의 정적을 갈랐다.
새벽 2시.
당직실을 몰래 빠져나온 남수민 환자가
나를 붙잡고 바둑을 두자고 조른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엔 말 한마디 없던 그가
바둑판 앞에만 앉으면 눈빛이 형형하게 변했다.
탁.
이번엔 내 차례였다.
[Probability Calculation...]
[Win Rate: 82.4% -> 91.1%]
[Enemy Pattern: Defensive. Unstable.]
“... 선생님, 바둑... 잘 두시네요.”
남수민이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주머니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불안한 듯 달달 떨리는 다리.
퀭한 눈 밑의 다크서클.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해 보였다.
탁. 탁. 탁.
돌 놓는 소리가 빨라졌다.
바둑판은 이미 흑돌인 내 쪽으로 승기가 기울고 있었다.
남수민의 백돌은 포위당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제... 끝내야 해.
그들이 보고 있어.
원장님이... 보고 계셔.”
남수민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나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릴 준비를 하며 무심하게 돌을 집어 들었다.
“수민 씨, 이제 그만 주무시죠. 제가 이겼습니다.”
“아니... 아니야! 아직 한 수 남았어! 이걸로... 이걸로 막으면 돼!”
남수민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의 손이 주머니에서 쑥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둑판의 정중앙에 무언가를 내리꽂았다.
툭.
그것은 돌이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아니었다.
물기를 머금은 고깃덩어리가 나무판에 부딪히는 둔탁하고 눅눅한 소리였다.
나는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
숨이 턱 막혔다.
그것은 바둑돌이 아니었다.
검은 털이 수북이 나 있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을 것 같이 보이는 고양이의 앞발이었다.
단면은 거칠게 잘려 있었다.
톱으로 썬 듯 뼈가 허옇게 드러나 있었고,
그 주위로 검붉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엉겨 붙어 있었다.
발톱 사이사이에는 시커먼 때와 흙,
그리고 알 수 없는 끈적한 점액질이 끼어 있었다.
지독한 악취가 반박자 늦게 코를 찔렀다.
“어때요...? 신의 한 수죠?
원장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착한 아이에게만 주는...”
남수민이 히죽거렸다.
그의 누런 치아가 형광등 불빛 아래서 번들거렸다.
나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으며,
그 잘린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치지직... 팟!
시야가 강렬하게 요동쳤다.
고양이 발톱 밑,
그 썩어가는 살점 사이에서 미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파장.
하지만 내 센서는 그 빛을 정확히 포착했다.
[Warning! High Energy Reaction Detected.]
[Substance Analysis: Blue Sea Ore (청해광상) Residue.]
[Purity: 99.8% (Refined)]
청해광상.
미래의 전쟁 주 연료.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간 푸른 저주.
그것이 왜 1982년의 정신병원,
잘린 고양이 발에서 나오고 있는가.
“으아아아아아―!”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덮쳐왔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을 굴렀다.
이선호의 의식과 기억들이 제임스의 의식 아래에 놓이며
완전한 위계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이선호의 일상 속 걱정... 비굴한 말투와
도저히 정이 가지 않는 어색한 웃음...
그 모든 것이 휴지통 폴더에 옮겨지듯 삭제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봉인되어 있던
제임스의 기억에 있던 거대한 파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System Rebooting...]
[Memory Sync: 90% Complete.]
[Identity Confirmed: Agent 409 (James).]
[Mission Status: ACTIVE.]
시야의 노이즈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세상이 좀 더 명확하고 선명해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더 이상 내 눈빛은 겁먹은 간호사 이선호의 것이 아니었다.
“... 남수민.”
내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남수민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순식간에 손을 뻗어 남수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선호의 근력은 약했지만,
인체 공학적으로 정확한 각도로 비틀어 올린 탓에
남수민은 숨도 쉬지 못하고 공중으로 들려 올려졌다.
“이거 어디서 났지?”
나는 바둑판 위의 고양이 발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커헉... 켁... 원, 원장님이...”
“원장실? 아니면 지하?”
“지... 지하... 트럭이... 쓰레기장에...”
충분했다.
나는 남수민을 소파 위로 던지듯 놓아주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며 자신의 목을 감싸 쥐었다.
[Objective Updated.]
[Primary Target: Hospital Basement Facility.]
[Sub Target: Waste Disposal Site (Evidence Collection).]
나는 바둑판 위에 놓인 고양이 발을 집어 들었다.
차갑고 축축한 감촉.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어."
나는 잘린 발을 주머니에 넣으며 일어섰다.
[4] 깊은 밤
꾸르륵... 쿵. 쏴아아.
벽 속에 매립된 노후한 수도 배관이
짐승의 내장처럼 꿈틀거리며 물을 흘려보냈다.
천장의 환풍구는 쇳소리를 내며 헐떡였고,
지하 독방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자들의 비명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와 빗소리에 섞여 오묘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나는 복도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뒷문으로 향했다.
내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선호의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보폭과 무게 중심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소음을 완벽히 차단했다.
[Stealth Mode: Active.]
[Noise Level: 0.2dB.]
비상구의 녹슨 철문을 밀자,
차가운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밤공기에는 흙냄새와 섞인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흑묘산의 검은 숲이 병원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병원을 향해 손짓하는 듯했다.
나는 남수민이 말했던 쓰레기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쓰레기장은 병원 부지 가장 구석진 곳,
소각로 옆 공터에 있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덤프트럭 한 대가 시동을 켠 채 정차해 있었다.
헤드라이트를 끈 채,
엔진만 낮게 그르렁거리는 검은색 트럭이었다.
나는 폐드럼통 뒤에 몸을 숨기고 트럭의 적재함을 살폈다.
번개가 치며 순간적으로 주위를 밝혔다.
“...!”
나는 숨을 멈췄다.
적재함에 가득 쌓인 것은 의료 폐기물이 아니었다.
검은색 털 뭉치들.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고양이 사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빗물에 젖어 축 늘어진 사체들은 하나같이 기이하게 비틀려 있었다.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프레스기로 짜낸 것처럼,
체내의 수분과 혈액이 몽땅 빠져나가 쭈글쭈글한 미라 상태였다.
[Target Analysis: Felis catus (Black Cat).]
[Status: Dehydrated. Essence Extracted.]
[Cause of Death: Rapid Bio-Energy Depletion.]
제임스의 냉철한 시스템이 사망 원인을 분석했다.
놈들은 분명 고양이를 청해광상을 만드는 데 활용했을 것이다.
심장 깊은 곳에서 이선호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공포.
절대 깨지 말아야 할 금기에 다가갔을 때 드는 압도적 긴장감.
‘작은 병원일 뿐인데, 청해광상을 어디서 어떻게 만든다는 거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빗물이 주먹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많은 고양이 사체가 동시에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죽어서도 감지 못한 눈들이 비 내리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부 두 명이 트럭 뒷문을 잠그고 운전석에 올랐다.
방호복을 입은 그들의 움직임은 군인처럼 절도 있었다.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빗속을 뚫고 트럭의 뒤를 밟았다.
트럭은 병원 밖으로 나가는 도로가 아니라,
막다른 길인 뒷마당의 공터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
잡초만 허무한 황무지였다.
그런데 트럭이 공터 중앙에 멈춰 서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리가 없었다.
육중한 기계 장치가 움직이는 소음이나 진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진흙으로 덮인 땅바닥이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르듯 매끄럽게 갈라졌다.
[Tech Level Warning: Anachronism Detected.]
[Era: 1982 / Tech Estimate: 2050+]
그것은 1980년대의 기술이 아니었다.
녹슨 경첩이나 쇠사슬 따위는 없었다.
완벽한 유압 실린더와 무소음 모터,
그리고 주변 풍경과 동화되는 '광학 위장(Camouflage)' 기술이 적용된 입구였다.
갈라진 땅 밑에서 창백한 LED 조명이 새어 나왔다.
빛은 차갑고 이질적이었다.
빗물 섞인 진흙탕 아래,
멸균된 백색의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트럭이 미끄러지듯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위잉 하는 소리 없이, 땅이 닫혔다.
잡초와 진흙이 감쪽같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흔적조차 없었다.
나는 비를 맞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시스템이 경고음을 토해냈다.
[Location Confirmed: Underground Facility Entrance.]
[Access Denied: High-Level Security Encryption.]
[Alternative Route : 5th Floor, Director’s Office.]
이곳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다.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고개를 돌려 병원 본관을 올려다보았다.
가장 높은 층, 유일하게 불이 꺼지지 않은 방.
원장실.
“원장실…. 무슨 특별한 방법이 없을까?”
[5] 폭동
오전 6시 17분.
비는 그쳤지만,
온기암 정신병원의 공기는 여전히 습기를 머금어 무거웠다.
나는 1층 당직실의 메인 컨트롤 패널 앞에 섰다.
1980년대식 투박한 철제 버튼과 아날로그 계기판들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Hacking Interface: Active.]
[Target: Central Locking System (Magnetic Type).]
[Security Level: Very Low.]
나는 보안 장치를 해체했다.
나는 이선호의 떨리는 손으로 가장 크고 붉은 버튼,
'전체 잠금 해제' 스위치를 눌렀다.
콰아아앙―!
묵직한 철제 빗장들이 동시에 풀리는 소리가 건물 전체의 뼈대를 뒤흔들었다.
수십 개의 병실 문이,
굳게 닫혀 있던 현관의 철문이,
환자들을 가두던 모든 문과 족쇄가 일제히 해제되었다.
정적이 흘렀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
잠에서 깬 환자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복도를 채웠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에게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위층에 누군가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난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어 5층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옥상 난간의 끝.
망태 할아버지는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비가 갠 맑은 아침 하늘로부터 햇살 환하게 쏟아졌다.
할아버지 뒤로는 커다란 망태기 수십 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중 한 망태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들리느냐, 온 우주들아!”
할아버지가 하늘을 향해 목청이 떨어져 나가도록 소리쳤다.
그의 백내장 낀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번뜩였다.
“내가 너희를 너무 오래 가둬두었구나.
이 좁고 더러운 건물 속에서, 비명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답답했느냐!”
그는 망태기 주둥이를 묶은 끈을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망태기를 기울여 난간 밖으로,
건물 중앙의 나선형 계단 통로를 향해 뒤집었다.
첫 번째 공이 떨어졌다.
통.
형광 노란색의 낡은 테니스 공 하나가
5층 난간에 부딪히는 맑고 경쾌한 소리.
그것은 고요한 병원의 침묵을 깨는 작은 파문이었다.
통. 토-동. 탁.
두 번째, 세 번째 공이 뒤따랐다.
공들은 계단 난간을 때리고,
벽을 타고 튀어 오르며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당직실에서 졸고 있던 경비원들이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뭐야? 누가 아침부터 소리를 질러?”
할아버지는 망태기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었고,
옥상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망태기를 모두 찢기 시작했다.
수많은 테니스 공이 한꺼번에 병원 내부로 흘러들어왔다.
계단 통로를 가득 메운 채,
마치 연두색의 거대한 해일이 되어 병원 내부를 가득 메웠다.
[Acoustic Warning: Decibel Surge Detected!]
소리가 변했다.
통통통거리던 경쾌한 리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쿠과과과광―!
수천 발의 기관총을 난사하는 듯한 굉음이 시작되었다.
고무 폭포가 콘크리트 바닥을 때리는 진동이 건물 전체를 미친 듯이 뒤흔들었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복도로 뛰쳐나온 경비원들은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
그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시야를 가득 채우는 테니스 공의 파도.
탄성을 가진 수만 개의 구체들이 바닥에 닿는 순간 사방팔방으로 튀어 올랐다.
병원 전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열린 문틈으로 그 광경을 목격한 환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아버지의 테니스 공이다!”
“이제 저건 다 내 거야!”
환자들이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
[Slow Motion Analysis Active.]
제임스의 시야에 비친 세상이 느리게 재생되었다.
찢어진 환자복을 입은 여자가 미친 듯이 웃으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녀의 손끝에 닿은 테니스 공이 슬로우 모션으로 회전하며 땀방울을 튀겼다.
곤봉을 빼 든 경비원이 달려들려다 발밑의 공을 밟았다.
그의 몸이 우스꽝스러운 각도로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얼굴 위로 수십 개의 공이 튀어 올랐다.
사람들은 넘어지고, 구르고, 서로 뒤엉켰다.
하지만 비명은 없었다.
오직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환호성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바닥을 구르는 공을 보물처럼 품에 안고,
열린 현관문을 향해 달렸다.
다시, 5층 옥상.
아수라장이 된 발밑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망태 할아버지의 표정은 평온했다.
빈 망태기가 그의 손에서 힘없이 펄럭였다.
“아름답구나.”
할아버지는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평생을 바쳐 닦아온 자신의 우주들을 해방시키는 광경에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 나도... 가야지.”
할아버지는 난간 위에 섰다.
발밑의 굉음이 자장가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는 두 팔을 벌렸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중력이 그를 잡아당겼지만,
그의 표정은 날개를 단 새처럼 자유로웠다.
햇빛을 받은 그의 몸이 천천히,
아주 우아하게 회전하며 아래로 멀어졌다.
마치 거대한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지상에 닿는 순간의 둔탁한 소리는,
테니스 공들의 소리에 묻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어디론가 날아갔을 수도.
경비원들과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잡으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Chaos Level: 98%. Optimal Distraction Achieved.]
[Path to Director's Office: Clear.]
나는 발밑에 차이는 테니스 공들을 밟으며
경비원들이 쓰러져 있는 로비를 가로질러 5층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1부 끝, 2부 다음 주에 계속)
매주 토요일, 새롭고 기발한 이야기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구독, 좋아요, 후원 부탁드립니다.
브런치북 전체 목록 링크 ▼
또 다른 이야기 보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