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에는 정원에 꽃무릇이 피지 않았다. 여름이 한창일 무렵 정원사를 불러다 나무를 다듬으면서 다 뽑아 버린 모양이었다. 매년 봄, 가을이면 쭉 뻗은 줄기 위로 핀 붉은 꽃을 보고 성묘 갈 때가 됐구나 한다. 꽃무릇은 일본어로 히강바나(彼岸花)라고 한다. 죽으면 건넌다는 강 너머에 있는 곳인 히강(彼岸 : 그러니까 저승) 에도 핀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꽃이 필 무렵은 오히강(お彼岸)이라 불리는데, 일주일정도 되며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일 년 중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가까이 있을 조상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성묘한다. 꽃무릇이 핀 곳에서 전할 말을 이야기하면 저쪽에 전해질 것 같기도 한 건 감상에 젖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올여름.
녹아버릴 것 같은 날씨에 연신 땀을 훔쳐내던 그때에. 학교에서 함께 임원 일을 하는 분의 아이가 갑작스럽게 하늘로 떠났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아직 일 년 동안의 행사를 다 해보지도 못하고 가버렸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학교 일을 하기 위해 연결되어 있는 단체톡방에서 그분의 예의 바른 인사말을 보자마자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숨이 멎은 아이를 직접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보내고 그 심정이 어땠을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다. 방학을 보내고 여름이 다 가는 시점에서 운동회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일 이야기 밖에 하지 않지만 시시때때로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할까 생각한다. 곧 회의가 있어서 얼굴을 마주 봐야 할 텐데 뭐라고 하면 좋을까. "식사는 잘하고 있나요." 여전히 이 말만 떠오른다. 마음 한편에 늘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말이다. 오늘.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둥이들 마중을 나갔다가 함께 임원일을 하는 분을 만났다. 실컷 일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면서 회계 감사를 했다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유치원 버스가 올 무렵. 항상 마음에 있던 분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 어쩌지. 심장이 또 덜컥 내려앉고, 할 말은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아이들은 오늘따라 신나게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옆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 집중하며 집으로 걸었다. 뒤로 돌아서 인사를 할까? 집으로 내려가는 골목길에서 아는 척을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버들강아지를 찾는 아이들의 시선을 쫓다가 지나쳐버렸다.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고 시시콜콜 떠드는 모습으로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괜히 저만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린 곳에 꽃무릇이 있었다.
괜히 속으로 먼저 간 아이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보았다. 꽃에다 대고 말하면 실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저쪽에 들릴 것 같아서.
다음에 만나면 좋은 향을 품은 향을 전해야겠다.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함께 담아서.
써 볼일 없는 말을 한다고 더듬지 않도록 연습도 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