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얽매이지 않고요
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으셨나요?
육아 관련 책도 아니고, 그저 20대 여자가 남자친구가 생긴 게 성장과 퍽이나 관련이 있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남자친구를 만들고, 연애를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누군가에게는 큰 변화이자 도전일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저처럼요.
저는 제가 연애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저의 주변의 남자들은 너무 별로였거든요. 그리고 자라나면서 10대 때 소설에서나 보던 남자주인공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고, 완전히 바꿔주지는 않잖아요. 결국, 내가 바뀌어야 하고,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내가 가진 결함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저의 성향을 설명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구구 절절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적으로, 주변의 남자들을 보면서 연애는커녕 데이트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남자들 다 똑같다는데 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진 않았습니다. 또한, 제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는 남자친구를 사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나 혼자만 보수적이고 뒤쳐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거든요. 남자친구가 없어도 여자친구들이 너무 좋았고, 엄마와 동생도 너무 좋아서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도전하기 무서우니, 모든 가능성들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살아간 거죠.
그러다가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도 호감이 있었고, 남자친구도 호감이 있었어요. 그 시기에 저에게 든 감정이 뭔지 아세요? 아이러니하게도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도 남자친구가 저에게 고백을 할까 봐 느끼는 두려움이었어요. 저는 아직 누군가를 사귈 준비가 안 되어있다고 느꼈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고백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른 소리를 하면서 그 순간을 넘겼죠. 그런 일을 두어 번 정도 하다 보니, 남자친구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카톡으로 고백을 해왔어요. 어찌나 심장이 쿵쾅거리던지..... 동시에 더 이상 이 사람을 편하게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기고, 놀랍게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해 보겠다고 했고, 그 상황을 거절이라고 느낀 남자친구가 도망 다니는 걸 그다음 날에 잡아다가 사귀기로 했어요.
바야흐로 제 첫 연애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아시려나요?
저는 첫 만남에 종교적인 이야기도 했고, 좋아한다는 마음도 밝혔습니다. 저는 여태껏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저의 첫 연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이렇게 제 마음을 고백한 것 자체가 저도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제 가정환경이나, 경험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니까요.
만약 행복할 줄 알았지만 당연히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시간과 일상을 가깝게 공유하게 되니 처음에는 그 과정이 너무 스트레스였습니다. 다른 여자분들은 연락이 안 와서 고민인 것 같았는데 저는 연락이 너무 많이 온다는 생각에 힘들었습니다. 친해지기 전이라 오래 만나는 것도 불편했고, 내 개인적인 불만이나 힘듦도 어디까지 이야기할 줄 몰라서 입을 꾹 다문 시기도 있었습니다. 질투가 남아도 꾹 참았던 시기가 있었고 제 생각이나 느낌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아마 많은 연애가 그러하듯이 갈등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저의 단점이나, 나쁜 점들이 오히려 눈에 보이더라고요. 이런 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준 가족들에게도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제 생각이나 감정을 부끄러워도 표현해야 한다고 느꼈고, 아직 부족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는 인간적으로도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점이 많지만, 그래서 보이고 배울 수 있는 점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제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 매 순간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치 있을만한 시간들을 보내고, 의지가 되어주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라 매우 고맙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든, 친척어른이든 주변의 좋은 남자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큰 저 같은 사람들은 남자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특히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 딸이 엄마의 인생을 산다는 이야기가 아주 무서웠어요.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럴 바에는 혼자 사는 게 천 배 정도 낫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라는 이야기가 자기처럼 살라고 저주라고 내리는 것처럼 싫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제 경험이나, 제가 가지고 있던 상상과 환상 속의 인물과 상대를 겹쳐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사람을 그대로 만나기로 했고, 제 남자친구는 너무 사랑스럽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물론, 결점도 있지만 저 역시 그런 것을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결점과 아닌 결점들을 나누고, 그럼에도 상대를 사랑하는 법 역시 제가 배우고 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과거의 경험이나 트라우마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감정을 느낄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그 경험에만 묶여있지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 역시 저도 나이를 먹고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