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에 짱 박혀 급식을 먹고, 매점을 다니며 야자에 썩어가는 중인 고등학생보다 오히려 더욱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학원을 직접 두 발로 오가야 하며 밥을 사 먹어야 하는 재수생들이었으니까. 그들은 성인이고, 무소속이고(소속 학원이 있다지만 그 소속감은 약했다), 다들 눈까리가 어딘가 반쯤 맛이 가있었다.
교문 닫힐 시간이 지난 오전인데 대치동 학원가/은마사거리 쪽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배회하는 다크서클 어린 까치집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재수생일 거다.
아니면 어설픈 화장과 어설픈 멋 부림(보통 대학생들이 꾸밀 때 첫 단계로 시도하는 파마나 염색, 코트나 예쁜 가방 정도의 아이템을 장착한다)으로 자신감+5 정도 장착한 [강화 ver. 재수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쉽게 이해했다.
"아, 재수생이야?"
그렇다고 그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대치동에서 재수한다는 것의 의미를. 오히려 대치동에 거주하는데 공부를 아예 못해버리거나, 공부에는 아예 관심이 없거나 한 애들은 절대 재수의 길을 걷지 않으니까.
본인이 지원하는 학교 대비 애매한 성적,
좋지 않은 운 (가불기: 현역이라 긴장해서 그래~),
그리고 대학 간판에 몇천쯤은 티슈곽에서 휴지 뽑듯 사용할 수 있는 가정환경까지 삼박자가 합해질 때
비로소 [대치동 재수생]이 탄생하는 것이다. 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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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재수생은 보통 두 갈래로 나뉘었다.
자발적 재수생
그리고 비자발적 재수생.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상대적이기에, 이렇게 분류했다. 아마 대부분의 재수생이 이 기준에 따라 확실히 나뉠 것이다. 이미 합격한 대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 때 한번 더 시도해 보지 언제 해보겠냐'라고 판단한 자발적 재수생들은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물론 자발적 재수라 해서 그 윗단계 학교로의 진학이 보장된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그들은 '이번 수능 망하면 끝장'이라며 배수진을 칠 필요도 없었고, 자발적이기에 경제적 스폰서(보통 부모님)와 트러블이 날 이슈도 적었으며, 기준점이 있기 때문에 목표설정이 쉬웠다.
반면 비자발적 재수생은?
???: 아, 상황이 그리 좋진 않은데요~
뭐, 쉽다. 전부 그 반대라고 보면 된다.
'이번 수능 망하면 끝장'이라는 극단적인 문장이 항상 뇌리에 콱 박혀있어 성격이예민하며,
경제적 스폰서와 갈등을 빚을 일이 굉장히 잦고,
명확한 자기 객관화과 쉽지 않기에 설정된 목표 또한 수시로 흔들린다. (보통 학원 선생님이랑 싸운다. 제가 왜 거길 못 가요? or 제가 왜 거길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