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대
늘 다름없는 수요일 오후.
대강의실에 모여있는 100명의 학생들은 그날도 다름없이 모두 교양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부채꼴 대강의 실 맨 꼭짓점 교탁에 서 있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이제 장기프로젝트 과제를 진행하려고 해요. 주제는 커플들끼리 결혼을 했다고 가정을 하고 결혼 준비를 하는 겁니다. 결혼 준비에 대한 리포트를 준비하고 제출하는 게 이번 학기 최종 과제이니 참고해 주세요."
그는 의아했다.
커플이 없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그가 혼자 생각하고 있을 때 교수님이 계속 말씀을 이어 나갔다.
"아 그리고 커플은 여기서 정하려고 합니다. 혹시 여기서 지금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고백을 할 수도 있어요 혹시 말해 볼 사람 있나요?"
100명의 사람들 그리고 큰 강의실에서 누가 나가서 고백을 할까? 그리고 그 고백을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거절당하면 그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그는 본인도 딱히 그럴 용기도 없었으면서 남들도 못하는 걸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 그의 옆자리 친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100명의 사람들은 그의 옆자리를 응시하였고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아~~~~~~~~~~~~우오~~ 우와~~~~~~~"
그 친구는 평소 그와 친구들에게 "저 여자 너무 이쁘지 않냐?" 라며 계속해서 말을 했었고 늘 지켜봐 왔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어차피 고백도 못하고 끝날 사이인걸 알고 굳이 반응하지도 않고 흘겨 들었다.
그런 그 친구가 100명 중 딱 한 명으로 손을 들었고 교수님은 그 친구를 교탁으로 불렀다.
교탁으로 나간 친구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아...."
이 소리에 100명의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집중하였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정말 고요했고 조용했다. 그렇다고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모두 그 친구의 입에 집중을 했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을 기세들이었다. 수업시간 교수님의 한마디 보다 더 집중도가 훨씬 큼이 느껴졌다.
"저기 빨간 가디건 입은 여자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목소리에 떨림과 수줍음이 가미된 한마디에 강의실의 인원 모두 그 지목당한 빨간 가디건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두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그 빨간 가디건 입은 여학생은 주변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으며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일제히 모든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그와 친구들은 부러움 반 부끄러움 반으로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이렇게 그 친구는 그 여학생과 커플이 되어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바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커플과 함께 강의를 듣고 있거나 커플이 있는 사람들은 나가주시면 됩니다."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업을 빨리 끝내고 나가려는 커플이 있는 학생들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모두 가방을 싸들고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어디선가 그 수업의 백미 커플정하기가 온 학교에 소문이 났는지 나가는 학생들 사이로 누가 커플이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강의실 문 밖에 머리만 내밀고 구경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동물원 구경거리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는 뭔가 자신에게도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설마 나... 커.... 커플 될 수 있는 거야?'
희망이 커지기 시작할 때쯤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남은 학생들은 커플이 없는 거죠? 좋아요! 그럼 남학생들은 종이에 이름을 적고 이 교탁 위에 제출해 주시고 자리로 다시 앉아주세요."
그와 친구들은 시시덕거리며 잔뜩 기대를 하였다.
"여학생들은 이제 나오셔서 한 명씩 교탁 위의 종이를 펼쳐 읽어주세요. 종이에 적힌 남학생과 커플이 돼서 과제를 해오시면 됩니다."
얼추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비슷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설마 내 종이는 읽히겠지.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히히'
교탁 위 마이크에서 이름이 읽힌 남자들은 일제히 가방을 싸고 이름을 부른 여학생과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강의실 밖 환경을 보니 나가서 서로 이름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어떤 커플들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거 같기도 했다.
그의 친구들 3명도 이내 이름이 불려서 커플이 된 여학생과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남자들이 50명 정도 있던 거 같은데 점점 40명, 30명, 20명... 그러다가 5명으로 좁혀졌다.
'에이~설마 5명 안에 내게 안 뽑힐까'
생각하는 사이 여자 1명 그리고 남은 종이는 3개였다.
그때까지 그는 뽑히지 않았다. 하늘에 신이 자신의 종이를 여자들이 집으려 할 때 요기조기로 숨겨 놓는 거 같았다.
이제 확률은 33.333%
그러나 그는 왠지 기대감이 없었다.
남은 마지막 여학생은 쪽지를 조용히 펴 읽었다.
마지막 커플은 그렇게 사이좋게 웃으며 강의실 밖으로 향했고 강의실에는 그와 어떤 남자 그리고 교수 셋 뿐이었다.
강의실 밖 그의 친구들은 처음엔 커플들을 구경하려고 보고 있었지만 마지막엔 누가 남는지를 보기 위해 그리고 막상 그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그를 보며 친구들은 킥킥대며 웃었다.
그는 수치스러웠고 부끄러웠고 친구들이 부러웠고 더 이상 교양과목에 미련이 없이 혼이 나가있었다.
교수님이 말했다.
"커플 될 사람은 있나요?"
"여동생이 있어요 과제는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말만 그렇게 했지 전혀 여동생과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과제를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어떤 여학생이 헐래 벌떡 뛰어왔다. 그리고는 남은 다른 남학생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제가 수업을 늦어서 그런데 혹시 저랑 커플로 과제하실래요?"
"네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그 남학생이 마지막에 같이 남아있어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 마저 마지막 커플이 되어 나갔다.
정말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00여 명의 학생들 중 커플이 안된 1인.
그 1인이 본인이라는 사실에 그는 울분이 샘솟았다. 이 세상 모든 게 짜증 났고 강의실 밖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처 웃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더 강의실 밖을 나가기 싫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재수가 없는 인생을 본 적이 없는데 그게 본인이었다.
그는 더 이상 기대도 하지 않고 공대에서 먼 곳에 있는 수업을 수강신청한 본인을 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