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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Oct 14. 2024

애들 좀 조용히 시켜요!

죄송해요. 그러나 좀 심하셨어요. 사과해 주세요.

평소와 다르게 센터에 오는 아이들 두 손이 무겁다. 한 손에 이불 가방, 다른 한 손에 간식 주머니를 들고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날, 오늘은 바로 센터에서 ‘어우러짐’을 하는 날이었다. 어우러짐은 센터에서 하룻밤 자는 날로, 부모님에게 공식적으로 허락받고 외박하는 날이기도 하다. 집에 아이들이 없는 날이기에 부모님들도 이날만큼은 자유다. 아이와 부모님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오랜 시간 사랑받은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나에게도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평소 시간에 쫓겨 아이들을 바라볼 시간이 적었는데, 이 날 만큼은 맛있는 거 먹으며 아이들과 밤늦게까지 놀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어떤 사람들은 캠프만으로도 힘든데, 굳이 센터에서 아이들을 재우냐며 걱정하기도 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고수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기!



이 프로그램은 내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에서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걸스카우트를 했었는데, 1년에 한두 번씩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었다. 친구들과 지냈던 시간, 재미있는 체험 등 모든 게 좋았다. 13살의 행복한 감정을 평생 안고 살던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오랜 시간 ‘어우러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도 부모님도 좋아했다. 


‘어우러짐’ 하는 날은 비교적 평소보다 아이들에게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평일에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 했던 체험도 하고, 게임하고, 노래도 마음껏 부르고, 춤도 추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밤새 수다 떨면서 놀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평소보다 흥분도가 높다. 평소 긴장하며 지냈던 나도 이 날만큼은 정신을 놓고 노는 편이었다. 정신없이 놀던 밤늦은 시간, 누군가 격하게 센터 현관문을 두드렸다. 큰소리에 놀라 우리 모두는 얼음이 됐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넘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나는 현관문으로 향하면서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문 좀 열어봐요. 1층에서 왔어요.” 


이상했다. 우리 센터는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떠들어도 큰 피해를 줄 일이 없었다. 특히 밤 11시에 어떤 가게도 열려있지 않다. 그래서 올라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 누구일지 잔뜩 긴장한 상태로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남자 한 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대체 지금 몇 시인 줄 알아요? 잠 안 자고 왜 떠들고 뛰는 거예요?
쿵쿵거리는 소리 때문에 밑에서 죽겠어요. 지금 제정신이에요?
여기 애들이 왜 이렇게 많고, 뛰는 이유가 뭔데?
애들이 이렇게 뛰면 어른이 말려야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대체 여기 뭐 하는 곳이에요?”

내 앞에 래퍼 한 사람이 서 있는 줄 알았다. 숨 쉴 틈 없이 많은 말을 쏟아내서 바람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밤늦게 뛰고 노래 부르고, 잘못한 건 우리 쪽이었기 때문에 그저 듣고만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아이들이 모두 얼어붙어 있었다. 그때서야 우리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르는 사람이 센터 안으로 쳐 들어와서 아이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데 이건 괜찮은 건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희가 오늘 센터에서 하룻밤 자는 날인데, 주변 신경을 못 썼어요. 우리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어디서 오셨는지 말씀도 하지 않고, 보시는 것처럼 아이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욕하고, 소리 지르고 아이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건 괜찮은 겁니까?” 


허리에 양손을 짚고 나는 당당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말을 듣던 남자는 아차 싶었는지 미안하다고 말한 후 1층 이발소에서 왔다고 답했다. 사실 이발소는 저녁 8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늘따라 예약 손님이 늦게까지 있어서 지금까지 일을 했다는 사장님 말에 죄송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여러 차례 사과했더니, 이발소 사장님도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고 말한 후 내려갔다. 


아이들은 얼어붙은 채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잘못한 건 맞지만, 아이들 앞에서 사장님 행동도 무례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화를 낸 건데,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편으로 내가 아이들을 잘 돌봤다면 굳이 안 봐도 될 장면을 보게 해서 미안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이 또한 살면서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이야기를 나눴다. 상기된 표정을 한 아이들에게 “많이 놀랐지?”하고 물었다. 고개를 떨군 채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나도 많이 놀랐고, 다 함께 정신없이 노느라 벌어진 일이고 사장님에게 정중하게 사과했으니까 다음부터 실수하지 말자고 말했다. 그리고 층간 소음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과 갈등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아무리 화가 나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어른이 위협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건 잘못됐다고 말해줬다. 모든 흐름이 끊겼고, 즐거웠던 기분도 모두 사라졌다. 조용히 이야기 나누다 자는 걸로 하고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대로 지나가면 이발소 사장님과 계속 불편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고민 끝에 간식을 들고 이발소로 내려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냉동고에 있던 포테이토 2 봉지를 들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내가 이발소 사장님에게 가서 간식을 주고 오려고 하는데 같이 갈 사람 있을까?” 물으니 여러 명이 손을 들었다. 그중 한 명과 함께 이발소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하고, 2층은 지역아동센터이며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학교 끝나면 이곳으로 와서 다양한 활동 한다고 간단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같이 간 아이도 고개 숙여 인사했고, 간식을 전달했다. 이발소 사장님은 무작정 소리부터 질러서 미안하다며 간식을 받지 않으셨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간식을 내려놓고 올라왔다. 그랬더니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편안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우리는 층간소음에 관해서 관심을 더 두며 조심했다. 물론 초등학생들이라 잘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층간소음을 생각하자고 말하면 금방 알아들었다. 만약 그날의 일을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 혼자 조용히 해결했다면 아이들은 하마도 혼난 일만 기억했을 것이다. 어른은 내 아이에게 성공과 좋은 경험만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살면서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많이 경험하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는 해결해 줄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건 문제해결능력이다. 누군가 대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보고 풀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분명 실패를 경험해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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