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슈룹 Oct 14. 2024

깨물어도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다?

자식을 차별하지 말아 주세요

이리 와, 엄마하고 뽀뽀하고 들어가야지!



센터 입구에서 펼쳐진 모녀의 애정행각에 기분이 상해버린 난 그만 속의 말을 뱉어버렸다. “어머니는 영희가 너무 예쁜가 봐요” 영희 엄마는 멋쩍게 웃으면서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희와 영희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는 누가 봐도 금방 알아차릴 만큼 유독 영희만 예뻐했다. 두 아이는 참 달랐다. 지희는 말이 없고 무뚝뚝한 반면 영희는 엄마 기분을 맞출 줄 알고, 애교도 많았다. 한 마디로 사랑받는 법을 잘 아는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차별은 아이들이 커갈수록 심해졌다. 


내가 두 자매에 관여하기 시작한 건 영희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지역아동센터를 다니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미 언니인 지희가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영희도 자연스럽게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두 아이가 따로 있을 때 몰랐는데, 지희는 엄마와 동생 앞에서 언제나 주눅이 들어있었다. 반면 영희는 엄마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어서 안하무인이었고, 언니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 콩쥐팥쥐도 아니고, 친엄마가 이런 차별을 하다니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희 엄마와 만난 지 3년이 흘러서야 솔직하게 물을 수 있었다.  


“어머니, 지희보다 영희 더 예뻐하고 있는 거 아시죠?”

“네, 저도 알아요. 지희는 영희만큼 안 예뻐요. 정도 안 가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으니 충격적이 컸다. 자식이 둘인데, 한 아이에게는 넘치도록 사랑을 주고, 다른 아이에게는 좁쌀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가에서 살게 된 지희 엄마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집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서둘렀던 엄마는 남편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차라리 취직을 하려고 직장을 알아보던 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임신 때문에 주저앉게 된 엄마는 아이를 원망했다. 특히 남편은 임신한 자신을 챙기지 않아서 극도로 외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어렵게 출산을 했는데,  모든 불행의 시작은 지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심한 우울증상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이미 지희는 10살인데, 여전히 아이를 부정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속절없이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고 있을 지희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처음부터 잘못된 거예요.”


어느새 엄마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슬픈 감정이 올라온 것 같았다. 그러다 잠시 후 갑자기 고개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희가 지희처럼 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영희만큼은 제대로 키우고 싶었어요. 임신을 계획했고, 출산 준비도 충분히 했죠.” 영희를 잘 키우고 싶다고 말하던 엄마는 흥분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말 중 어디에도 지희는 없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있냐는 말이 지희 엄마에겐 예외인 것 같았다. 그래도 지희도 자식인데,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 않냐고 물었다. “지희는 남편이랑 너무 닮았어요.” 엄마가 지희를 싫어하는 이유를 또 하나 찾았다. 남편과 지희가 너무 닮아서 부부싸움하고 나면 지희에게 더 냉랭하게 대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듣는 순간 내 어린 시절이 빛과 같은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너는 네 아빠랑 똑같이 생겼어” 이 말은 엄마 기분에 따라 나에게 다르게 들렸다. 부모님이 싸우고 나면 나에게 독화살이 되어 내리 꽂혔고, 부모님 사이가 좋으면 나에게 초콜릿 같은 달콤함을 줬다. 하루가 멀다고 싸웠던 부모님이었기 때문에 독화살로 나에게 날아올 때가 훨씬 많았다. 부모님이 싸운 다음 날이면 난 엄마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꽤 노력했다. 자칫 잘못 걸리면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으로 몇 날 며칠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습자지처럼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있다. 그래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나 같은 경험을 지희도 겪게 될 걸 생각하니 남일 같지 않아서 뭐든 해야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변화가 시급한 가족이었다. 면담 말미에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상담을 권했다. 물론 큰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엄마가 흔쾌히 허락해서 고마웠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초기 상담을 다녀온 엄마는 상담 선생님에게 내 이야기가 하기 싫다, 검사는 왜 이렇게 많냐, 바빠서 못 가겠다 등 온갖 핑계를 대고 상담실에 가지 않았다. 내가 지희를 아무리 걱정해도 엄마가 움직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다. 결국 엄마를 포기하고 지도방향을 바꿨다. 


영희에게 배려와 공감하는 마음을, 지희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일상에서 사소한 성공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왔다. “너 참 괜찮은 사람이야.”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해줬다. 그러나 엄마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지 않으니 두 아이는 계속 제자리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불행의 대물림을 막고 싶었을 뿐이다. 엄마의 불행한 마음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모 역시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자식에게 상처로 남길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이기 때문에 해야 할 역할과 자식에게 꼭 쏟아야 할 사랑이 있다. 부모에게 깊고 진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잘 성장해 나갈 수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 부모가 겪은 것보다 더 깊고 아픈 굴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세상 전부다. 그런 전부에게 부정당하고 외면당한다면 아이는 무슨 힘으로 살 수 있을까? 지희가 커서 부모가 되면 엄마한테 받은 걸 그대로 할 확률이 높다. 난 그저 불행의 대물림을 막고 싶을 뿐이다. 지희 엄마는 면담 중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어릴 때 사랑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지희한테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큰 아이한테 주지 못하는 사랑을 둘째에게는 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지희 엄마 말은 핑계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는 부모인데, 부모가 변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상 답이 보이지 않는다.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걸 싫어하는 게 부모다. 때문에 


비록 지희 엄마는 아이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손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세상에 어른이 모두 똑같지 않음을 알려주고 싶었고,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였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저 부모가 미성숙해서 표현을 그렇게 했을 뿐이지, 지희 잘못은 절대 아니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지희가 성장해서 부모를 바라볼 때 원망하는 마음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런 날은 쉽게, 빨리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어른이 된 후에도 내내 부모님을 원망했다. 언제까지 부모를 원망하며 살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 아주 늦게 왔다. 깨달은 후 부모님의 성장배경, 가족관계, 인간관계를 이해하면서 오랜 시간 생각하고,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부모님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결국 부모님을 인간으로 이해하고 나니, 나와 부모의 관계를 이해하게 됐다. 물론 완벽할 수 없지만, 인간은 누구나 미성숙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천천히 나아가면 좋겠다. 


혹시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로 마음이 아픈 분이라면 말해주고 싶다. 인간은 절대 완벽할 수 없다. 내 부모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대로 인정하고 그 상처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길 바란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부모를 미워하고, 원망해도 좋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다. 다만, 내 상처가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것만 막아주길 바란다. 어렵겠지만, 부모라는 이름으로 꼭 해내길 응원한다. 

이전 14화 애들 좀 조용히 시켜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