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화 벨소리가 두렵습니다.

전화 트라우마 극복기

by 퍼플슈룹

최근에 알게 됐다. 내가 전화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간 어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직장 생활했으며, 사람을 좋아하고,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 어려움이 없는 등 나는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다. 지인들에게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면 전혀 믿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 수월하게 통화한다. 그런데 내적으로 전화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도 않고, 택배로 사람 만나기는 더 불편하고, 극소수 친한 몇 명을 제외하고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망설이는 내 모습을 알아채고 원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크게 티가 나지 않아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없는 듯 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기 때문에 꼭 극복해야 했다. 원인을 곰곰이 생각했다.




01. "야! 내 목소리도 몰라?"


비서실에 4년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다. 물론 경력이 쌓일수록 듣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를 빨리 알아차려야 했고, 기관지가 좋지 않아 고생하는 사장님 말씀을 빨리 알아들어야 했다. 특히 전화해서 자신을 밝히지 않을 때 더 긴장됐다. 야단 듣기 싫었고, 잘하고 싶어서 노력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


청각과 시각 발달.


목소리를 빨리 알아차리고, 한 번 본 사람은 기억을 잘해야 하는 직업 특성으로 생긴 결과였다. 이는 향후 직장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감사할 일이라고 봐야 할지.


02. "000 가이드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


관광가이드를 3년 하면서 다채로운 실수가 있었다. 처음부터 업무에 대한 교육이 없었으니 잔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수 때문에 사무실에서 연락을 종종 받았다. 전화가 올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일본에서 이런 실수가 있었다. 그날은 단체관광객과 후쿠오카 여행 중이었다. 오전 투어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에 갔다. 회사, 투어명, 인원, 메뉴까지 동일한 식사가 두 곳에 세팅되어 있었다. 어느 쪽인지 식당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아무 데나 앉으라고 해서 그냥 먹었다. 두어 시간 이후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식사를 잘 못 했다고. 다른 팀이 할 식사를 우리가 했다고. 메뉴는 같았으나 추가 음식이 있는 것을 먹어버린 것이다. 나와 함께 한 관광객들은 좋았지만, 돈이 더 들게 되어 회사는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질책을 받았다.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웠지만 달게 받았다.


03. "당장 점장 나오라고 해"


000 피자에서 4년 근무를 했다. 외식업체 근무를 하면 고객과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특히 어린이날, 명절 등 연휴는 미치게 바쁜 날이다.


주문은 밀려서 숨이 턱턱 막히던 어느 날 문제가 발생했다. 크리스마스이브로 기억한다. 이런 날은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바쁘다.


늦은 저녁, 영업장 문이 벌컥 열렸다.


"야! 당장 점장 나오라고 해!" 그 소리에 놀라 피자를 만들다 말고 나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내가 전화를 얼마나 했는데, 왜 전화 안 받아! 피자에 머리카락 나왔다고 말했으면 빨리 새 피자를 갖다 줘야지 왜 여태 안 갖고 오는 거야?"


손톱만큼 남은 피자에 있는 머리카락은 아무리 살펴도 우리 직원 머리카락 색깔과 달랐기 때문에 도저히 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해줘야 한다. 진상이다. 난 진상고객 대응에 약했다. 같이 화내며 싸우기 때문에. 이 날도 부점장이 일처리를 했다. 미안했다.


04. "센터장님"


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긴장모드.


'아.. 이 엄마가 왜 전화했을까? 오늘도 울려고?'

'구청에서 전화가 왜 올까? 정산이 잘 못 됐나?' '학교에서 전화가 왜 오는 거지? 우리 애가 문제를 일으켰나?'


아이들과 있다 보면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그리고 터졌다 하면 크게 터진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났어요. 가서 말려주세요" "놀이터에서 친구가 저를 놀리는 낙서를 했어요" 등 그냥 지나는 날은 손꼽을 정도.

"내 딸 내놓으라고!"


지역아동센터에서 8년.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일했다.


05. "너 지금 어디야? 너 당장 때려치워!"


우리 집은 통금시간이 있었다. 아들에게 없는 통금시간이 말이다. 통금시간은 내 발목을 잡기 일쑤였다. 특히 회식 참여는 엄두를 못 냈다.


외식업체 근무하던 어느 날, 매장 평가를 마치고 고생한 직원들과 강남에서 회식을 했다. 즐기는 동안 통금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엄마에게 전화가 미친 듯이 와 있었다. 물론 나도 잘못했다. '늦는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욕과 함께 몹쓸 말을 들을 게 뻔했기 때문에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모른 척하면 더 불행한 결과가 생기는 걸 나는 잘 안다. 엄마는 다음 날 출근을 못 하게 했다. 그리고 '당장 때려치워'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난 출근을 했다. 이후 외출금지, 회식 금지 등 최악의 상황을 감당하는 건 내 몫이었다. 이런 삶을 30년 넘게 살다 보니 친구들은 말했다.


"왜 그렇게 살아?"


맞다. 한심했다. 20대, 30대 때 나는 부모와 싸울 힘도, 감당할 힘도 없었다. 렇게 지내다 보니 무기력증까지 더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하는 나'와 '자녀인 나'는 천지차이였다. 나는 그저 빨리 독립할 날을 기다리며 버텨냈다.


그런데 내 나이 40줄에 접어들었을 때 엄마가 나에게 사과했다.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미안했다'라고.


지천명이 코앞인 내게 이런 사과..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난 27년 간 직장생활을 했고, 우리 집에서 48년을 살았다. 그 과정 중 일어났던 불편하고 힘든 과정을 건강하게 이겨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면서 크게 티 나지 않게 마음의 병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사회복지, 상담 공부하며 조금씩 극복했다. 아니, 극복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지금은 독립도 했고, 부모에게 할 말 하며 무난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남은 것을 알았으니, 잘 다스리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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