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직장을 꼭 다녀야 할까?

만약 서울에 살았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by 퍼플슈룹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직업군인(해군)이었다. 그 덕에 벚꽃이 예쁜 도시 진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직업군인을 그만두고, 마산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살던 날, 이런저런 상황을 제외하면 대략 40년 넘게 인천에 산 것 같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첫 직장까지 인천이었으니 인천은 나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다.


이런 내가 서울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22살쯤으로 기억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지하철이 한강을 건너는 데 숨이 멎을 것만 같았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뇌리에 콕!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촌스럽게도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긴 일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서울과 인연이 시작된 것은 25살부터. 관광통역안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남영역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한강을 매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서울이란 도시가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서울로 향할까?'




1년 반 학원에 다니고 자격증 취득 후 관광가이드 일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출퇴근 길이 시작됐다. 관광가이드는 근무 시간이 대중없어서 첫 차 타고 출근, 막차 타고 퇴근할 때도 많았다. 내 나이 27살, 이 정도쯤 우스웠다. 펄펄 날아다녔다. 바라던 서울로 직장을 다녔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직업을 바꾸면서 근무지도 바뀌었다. 영등포, 여의도, 시청, 강남, 논현, 학동 등 서울을 누비고 다녔다. 주변에서 힘들지 않냐고 물었지만, '직장은 무조건 서울로 다녀야 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다.


10년, 20년 이렇게 지내면서 점점 지쳐가는 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깨가 축 처지고, 지하철에 자리가 나면 앉느라 바쁘고,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이렇게 길바닥에 시간을 뿌리며 사는 게 맞는가?, 피곤함에 함몰된 삶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몸은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 나가려면 2시간 이상 걸리는데, 서울 사는 사람들은 1시간이면 어디든 간다. 회식해도 "왜 매번 먼저 가냐?"라고 싫은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지하철 끊기기 전에 가야 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나와야 했다. 먼저 나왔어도, 회식 끝나고 집에 가는 사람들보다 늦게 도착했다. 나는 빨리 나온 건데, 집에 가면 늦게 왔다고 욕먹기 일쑤였다. 신나게 노는데 흐름 끊기기 싫었고, 집에서 욕먹기 싫었다. 그렇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차를 몰거나 독립을 고민했지만, 돈도 없었고 막상 자신도 없었다. 그때 난 무엇도 결정할 힘이 없었던 것 같다. '왜 우리 부모님은 인천에 살아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내가 서울 살았다면 일도 더 잘하고 승진도 빨랐을 거야'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바보 같기만 한 나였다.




일도 지치고 사는 것도 귀찮고, 고단함이 참을 수 없을 '화'로 바뀌어 스스로 주체가 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길가에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 집에 간 적도 여러 차례. '만약 내가 서울에 살았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문득 나의 해방일지 대사가 생각난다.


힘들어요, 집도 멀고, 지쳤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서울로 직장을 다닌 지 24년째. 정년퇴직까지 다닌다면 앞으로 16년은 더 가야 한다. 전보다 나아진 건 독립을 해서 1시간이면 서울 중심부까지 간다는 점. 내 모든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내 청춘, 비록 출퇴근이 죽도록 힘들었고, 직장생활이 고달팠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래서 치열하게 살았던 그 시절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인천, 거기 시골 아냐?"라고 말했던 지인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인천에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있고, 학창 시절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내 꿈이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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