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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巨人 3

공존(共存)

by 위공

막둥이와 여행 삼일째 되는 날이다. 호이안에서 밤배를 타고 즐기며 늦게 숙소에 들어왔다.

막둥이가 일사천리로 숙소에 잠자리까지 편안하게 해 주어 정말 편안하게 꿈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분위기라면, 정말 여행이 아니라 주거지로 계속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 전에, 딸 집에 갔을 때 키우는 고양이의 자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아마도 이 녀석처럼 극락 같은 잠자리에 들어 열반에 드는 꿈도 꾸었으리라.


"이건 완전히 늘어진 팔자네~에."

정공은 딸들이 부탁한 날에 딸 집에 오니, 고양이가 열반에 들었는 모습을 보고 독백을 내뱉었다.

"개팔자는 상팔자라고 들었지만, 고양이 팔자가 이럴 줄이야........."

그리고 정공은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고양이가 반겨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열반에 들었는지라, 중생의 어떤 주문도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딸들 집안에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데, 여행만 가면 아빠가 케어하기에 오늘도 그렇게 온 것이다.

"아가야! 일어나라~ 뭐라도 먹어야지......."

딸들이 냥이 음식은 간곡히 부탁을 해서, 배고픔을 장시간 방치하면 안 된다는 말을 상기시키며 먹도록 했다.

그러나 잠깐 쳐다보고 다시 꿀잠을 청했다.

정공은 묘(猫) 팔자도 요즘은 상당히 개팔자보다 더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딸들 집고양이를 케어해 주면서 자연히 동물들 사랑도 돈독하게 느꼈다.

그리고 정공이 어릴 적 웬만한 동물들은 잘 키웠기에, 자식들도 본받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여행이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오늘은 영흥사에 갔다.

대한 해수관음상 약사여래가 다낭 바닷가를 내려다보며 우리를 반겼다.

"아빠! 저것 좀 봐, 우~와! 원숭이다."

"어! 그러네, 원숭이가 우리를 구경하네!"

정공은 어릴 적에 서커단에서 훈련받은 원숭이 쇼를 봤지만, 실제로 사람과 교감하는 야생원숭이는 처음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바나나를 탈취하는 원숭이를 보며 신기하고 재미가 났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도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해, 야생동물과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6.25 전쟁까지 겪다 보니, 거의 야생동물이 멸종되어 안타깝다.

이렇게 야생동물과 생생히 마주치며 즐기는 사람들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까지 했다.

개나 소나 논에서 자유롭게 노는 오리들이나 모두 여기에서는 그야말로 동물의 낙원이다.

자유와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사람이나 동물도 한데 어우러져, 같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고 있다.

베트남 도심지나 시골에서 한가로이 다니는 동물을 보면서 한결같이 무심 심하다는 것이다.

동물들도 어쩌면 그 나라, 백성이 주인인 사람들을 닮는가 보다.

어질고 순박하며, 여유, 자유, 평화, 부드러움, 상냥함도 함께 외지 방문객들에게 다가왔다.

영흥사를 갔다 오며 숙소로 오면서, 정공이 느낀 베트남은 사람과 동물 전부 다 행복하게 보였다.

내가 지금 행복한 탓일까? 아니면 우리 막둥이가 정성껏 아빠를 돌본 탓일까?

어쨌든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빠! 오늘 너무 재미있었지? 특히 원숭이가 우스웠어."

"그래, 원숭이에게 갑자기 바나나를 뺏긴 사람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더 우스웠지."

이곳에 원숭이는 야생동물로서 사람들과 아주 친근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게 특이한 광경이다.

이곳 원숭이과 대조적인 상황으로, 몽골여행에서 사람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낙타가 생각이 났다.

정공은 몽골여행에서 낙타에게 느낀 점의 결론은 동물도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낙타는 사막여행에서 운행수단이며 관광객들을 태우며 탐방코스를 순회한다.

그날, 정공이 탈 차례인데, 정공이 탈 낙타가 태우기를 거부하며 일어나질 않았다.

기분이 안 좋은지~ 몸상태가 안 좋은지, 마부(낙타조련사)가 일으켜 세우려 해도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마부가 회초리를 때리며 강제로 일으키자, 할 수 없는 듯이 정공을 태우고 순회하였다.

정공은 타는 즐거움보다 낙타에 대해 미안해서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요즘은 가축이든 야생동물이든 사람들에 의해서 서식지와 살고 있는 환경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가축은 식량공급원으로 대량사육을 행하여 숨 쉴 수도 없는 공간에 몰아넣고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야생동물 역시 인간들의 안락한 삶의 터전을 위해 무작정 개발로 야생동물의 본거지를 침입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동물들에게 정감이 있고 사랑하는 연민이 있었다.

베트남은 정말 이러한 동물에 대한 자유와 배려가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정다감한 느낌이 들었다.

베트남 여행을 통해 사람과 동물이 서로 공생공존을 위한다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보여 주었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을 마음대로 부리고 때로는 살육하여 양식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동물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연민의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연민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연민은 어떻게 동물에게 전달될까?

인간이 동물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속에 존재하는 영혼이 동물에게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푸른 초원에서 많은 양들을 보호하는 목동들이 있다.

어떤 목동들은 양들을 아주 잘 다룰 수가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목동들은 양들에게 아무렇게나 대한다.

말을 듣지 않고 제각각 행동하는 양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이와 같은 경우, 경험이 많은 목동이라면 양들을 다루기 위해 효과적으로 회초리를 사용한다.

반면에 경험이 없는 어리석은 목동은 양들을 향해 직접 회초리를 내려치거나 해서 더욱 양들을 놀라게 한다.

회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길을 안내하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동물을 향해 직접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동물은 사람을 좋아하고 따른다.

자연과 생명이 시작된 태고(太古) 때부터 사람과 동물은 가까이 해온 것은 사실이다.

야생에서 가축으로, 모든 동물에 이르기까지 사람괴의 인연이 그렇게 해온 것이다.

그리고 동물들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한다. 단지, 인간들이 자신들을 침해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렇다.

양을 잘 길들이는 목동처럼, 사람들도 동물들을 잘 길들이는 것이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방편이다.

사람은 자신을 잘 다스려 자신을 보호하듯이, 동물들에게도 이러한 선행으로 보호해야 한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 자유와 평화를 위한 공존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우리는 희망적인 미래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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