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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문장은

by 이지영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특정 분야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 혹은 교양을 얻기 위해서,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위안을 얻기 위해, 혹은 현실에서 벗어나 즐거운 이야깃거리에 몰입하기 위해 읽기도 하고요. 베스트셀러라서, 다들 그 책을 읽으니까, 유명하니까, 호기심에 첫 장을 열어보기도 할 테지요. 그래서 재미있게 읽기도 하지만 숙제처럼 책을 읽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 책을 읽었든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자극이나 보상을 원했을 겁니다.


독자의 시선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독자로서, 여러분은 어떤 글들을 읽고 싶으신가요? 만약 우리 눈앞에 에세이 한 편이 있다면 어떤 에세이에 내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마땅한가요? 우리는 애초에 무엇을 읽고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요?


우리는 도파민이 되어 줄 무언가가 팝콘처럼 튀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람이든 책이든 무언가가 그저 나를 사로잡거나, 나를 '성장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세상을 논하는 다양한 책 보다 나를 좀 더 성장하게 해 줄 책을 찾아 먹어치우듯 '책 식사'를 '해결'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고, 책을 읽는 사람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돈과 시간, 감정을 소비하는 것에서조차도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회. 더 깊은 공감과 위해 소통을 위해 ‘그럴 수’를 던지지 않는 사회. 돈 모으는 재미도, 아이 키우는 재미도 없는 요즘의 시대에 책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것은 작가이자 퇴고 전문가로서의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퇴고를 업으로 삼아 지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초고와 저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문득 이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야기,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쓴 자전적인 글은 모두가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글쓰기 테라피 ‘나에게 묻다’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도반들과 함께 흘린 눈물이 그 깨달음의 씨앗이었습니다. 작은 문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힘을 길러준 것이었습니다. 함께 그날의 이야기와 질문을 듣고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고, 서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우연히 옆에 자리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시간. 그 시간은 드라마나 소설보다 덜 자극적이더라도 바로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그럴 수'를 자연스럽게 던지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습니다.


도반들은 그렇게 ‘나다움’에 가까이 다가가곤 했습니다. 일상에 파묻혀 잊고 있던 자신을 꺼내,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키웠지요. 존재가 명확해지고, 단단해지고, 갈고 닦고나면 대부분 새로운 자아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실제로 선항 영향력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쓰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들의 놀라운 성장과 기록으로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잊혀진 자아는, 잊혀진 꿈과도 같았기 때문일까요?



우리들의 에세이는 글을 어떻게든 써야겠다는 결심이 일었고, 결국 표현해 냈고, 각고의 노력으로 끝맺음을 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고뇌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진심을 꺼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제한된 지면 안에서 생각을 정제해 나갔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모든 글이 사람 사는 사회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잘 마무리된 글은 글쓴이의 역사와 내면의 감정, 사상이 담긴 정수입니다.


모든 글은 중요합니다. 자기 계발서, 에세이, 시, 소설, 교양서적까지… 놓칠 수 없는 새로운 세계, 지식과 정보들로 가득 차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마지막까지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문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가족, 주변이웃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작은 이야기들이 가라앉은 바닷속과 같습니다. 그 속에서 나뿐만이 아닌 내 주변의 희로애락과 삶의 의미도 건져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를 동시에 존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나의 글을 씀으로써 ‘나다움’에 다가갔다면, 나와 나를 둘러싼 크고 작은 ‘세상’과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해야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다움을 발견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의 진정한 기쁨은 주변의 응원과 안정으로 완성되기 때문이지요. 과거에 나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내 자아는 그것을 양분으로 자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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