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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Feb 04. 2022

달이 뜨기 전에 4

4. 구두수선방

하지만, 이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여주었다. 머릿속 생각은 텅 비었는데, 몸은 자연스럽고 다행스럽게 움직여주었다. 


조금 멀리 카페가 보였다. 나직하게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발걸음도 조금 빨라지는 것 같았다. 그 카페 옆에는 분명 구두 수선 방이 있을 것이다. 아저씨가 있으려나, 나는 다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려 노력했다. 멀리 어떤 아저씨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나는 다가갈수록 가까워지는 아저씨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아저씨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셨다. 그 건물 안쪽으로 다가와 보니, 철재 미닫이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구두를 들고 오는 나를 위해 열어두신 것 같았다. 덜렁대는 구두를 들고 오는 나를 보신 것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문 위 우뚝 선 선풍기 히터가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차가운 공기는 천천히 데워지는 듯했다.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며, 구두를 드렸다. 좁은 공간 속 대기의자는 아저씨 바로 앞에나 있었다. 나는 그냥 서 있을까 망설이다가 의자에 앉았다. 좁고 딱딱한 의자였다. 의자는 마른 나의 몸무게에도 약간 휘청되었다. 아저씨와 이렇게 50cm도 안 되는 사이를 두고 앉기가 부담스러웠지만, 몸이 휴식을 원한 듯 앉아버렸다. 아저씨는 구두를 살피더니, 나에게 구두를 다시 보였다.


“ 이거 구두 밑창도 갈아야겠네, 어떻게 한 번도 안 간 것 같아. 구두 굽이랑 다 갈아야 편히 신고 다니지”


딱딱하고 퉁명스러운 아저씨의 말투에 평소 같았으면, 돈도 드는데 그냥 굽만 갈아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닳아 있는 밑창을 보니 안 될 것 같았다. 볼품없는 구두의 밑바닥이 지금의 내 모습 같았다. 아저씨는 이리저리 닳아버린 밑창을 떼어내셨다. 망치의 둥근 고리를 활용하여 밑창 안을 밀어내니 바닥이 불쑥 일어났다. 벌어진 사이로 못을 대고 망치질이 이어지니, 밑창이 곧 분리가 되었다. 구두 밑창과 그것을 지탱하던 못들이 볼품없이 빠져나왔다. 흡사 못이 이빨이 되어 악어 입이 떠억 벌어진 것 같았다. 


구두 밑이 사라진 구두는 구두보다는 발의 껍데기 같았다. 왠지 모르게 처량해 보였다. 아저씨는 오른쪽 바로 옆에 있는 모터 기계를 켰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먼지가 쌓인 오래된 기계였다. 모터가 돌아가면서 체인이 힘차게 돌아갔다. 체인 틀에 구두의 밑바닥을 들이대니 삐쭉삐쭉 나왔던 것들이 갈아졌다. 구두와 틀이 만날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나는 이 요란한 소리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슬퍼도 대성통곡 한 번 못해본 나를 대신하여 시원하게 울어주는 것 같았다. 요란한 소리는 몇 번 더 반복되었다.


아저씨가 기계를 끄니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아저씨는 일어나, 벽에 가득한 선반에서 구두 굽을 찾아본다. 몇 개 안 되는 선반에는 비교적 많은 굽들이 줄지어 있었다. 여자 대학에 주요 고객층을 위해 이렇게나 많고 다양한 여자 구두 굽을 구비해 놓으신 것 같았다. 몇 개를 잡아 이전 것과 비교해 보신다. 그중 한 개가 낙찰되었다. 아저씨는 그것을 내게 보이며,


“이것으로 할게. 이전 것과 아주 똑같은 것은 없네. ”


내 눈앞에 구두 굽이 신기한 보물처럼 다가왔다. 이렇게 굽만 따로 볼일은 없었기에 그것은 색다른 물건처럼 다가왔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저씨는 구두에 안쪽에서 쿠션을 걷어내고 못을 박고 다시 구두를 뒤집어 굽을 끼웠다. 힘찬 망치질이 이어진다. 땅! 땅! 거침없고 명쾌한 망치질이었다. 굽이 바뀌니 새로운 신발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은 완성이 아니다.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졌다. 아저씨는 구두 밑창으로 고무판을 대셨다. 고무판만을 모인 상자에서 나의 구두 크기와 비슷한 고무판을 꺼내신다. 구두 밑 모양을 따라 자연스러운 칼질이 막힘없이 이어진다. 두께가 있는 고무가 이렇게 잘 잘라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노련한 솜씨였다. 고무가 구두 모양에 맞게 시원스레 잘려나가고, 자투리는 다시 원래 있던 상자로 돌아갔다. 나도 따라 무언가 시원하게 자르고 싶었다. 잘 잘려나가는 무언가를 통해 뿌듯함을 느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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