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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27. 2022

당신의 기억을 살 수 있나요?

9. 당신을 닮은 조각상 3

민서는 1층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이 보이는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니, 잔디 정원에 있는 공동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던 군상이 보였다. 내리려고 했던 3층에 도착했지만, 다시 1층을 누리고 내려갔다. 점점 멀어지는 작품이 점점 가까워졌다. 정원 안에 군상으로 다가갔는데, 뜻밖에 군상 앞에 서 있는 이수진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 작품 보러 왔어요?    


네.    


정말 자기 모습 같으세요?    


민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아.. 제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잘 모르겠네요.     


혹시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으신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저는 스스로 기억할 수 없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요. 종종 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주위에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 사람들의 기억들로 나를 만들었어요.    


누구나 그런 경향이 있죠. 저도 뭐 그리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이기도 하니, 더구나 이수진 씨는 기억이라는 것에 더 민감했을 것 같아요. 내가 기억 못 하는 나에 대한 불안감이 어쩌면...     


아니요. 꼭 기면증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다른 사람의 기억들 속에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궁금하고, 그것에 집착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기억을 샀다고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산 그 기억들로 차곡차곡 나를 이해하려 했는지 몰라요. 제가 샀다는 표현을 한 것은 어떤 사람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아도, 그렇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에게는 늘 다른 사람이 들어와 앉아 있었어요. 

누구나 그렇게 한다고... 누구나 그렇게 산다고.... 그게 꼭 괜찮은 방법은 아니잖아요. 그 기억들은 제게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었고, 그게 습관이 되고., 근데 습관이라는 것이 꼭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 습관들은 결국 저를 방황하게 만들었어요. 처음에 그 방황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아... 그랬군요.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내 모습이 과연 내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죠. 저는 하나의 모습인데, 때로는 엄마가 하는 이야기 아빠가 하는 이야기가 달랐어요. 엄마는 저에게 엄격하신 편이었고, 아빠는 저에게 관대하신 편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각자가 지니신 시각으로 저는 괜찮은 아이가 되기도 했고, 똑같은 행동을 했던 제가 갑자기 문제가 있는 아이도 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기억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 결국 어떤 프레임을 만드는 기억을 믿지 않게 된 것이죠.     

내가 느끼는 순간순간을 그저 겸손함으로 집중하는 것 그게 저에게 최선이 되었어요. 지금껏 쌓아온 것들을 곱씹어보면서요...    


지금이라도 그런 것을 깨달았으니 성공한 것 아닐까요?  


그런가요? 그러면 그나마 위안을 얻네요. 그런데,.. 이 작품을 보니... 이것이 만약 저라면, 저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저에 대한 기억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해보네요.      


민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뭇되었다.     


지금의... 지금의 이수진 씨가 더 아름다우십니다.    


이수진은 말없이 웃는다.    


민서는 진심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과거의 이 작품을 만든 사람으로서 지금 느끼는 진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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