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이 뜨기 전에 Mar 17. 2023

파란, 기억여행자 7

과거는 잠시 여행을 가는 곳이에요.

무리를 지은 검은 점들은 앞서가던 한 점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 갔다. 이내 무리가 뒤엉키더니 한 점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체 없이 아래로 빠르게 떨어지는 점과는 다르게 다른 점들은 넓은 하늘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점을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여우도 떨어지는 곳을 향해, 날렵하게 수풀을 헤치고 가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가고 싶었지만, 이런 작은 몸집으로는 오래 동안 날 수 없었다. 가다 쉬다, 가다 쉬고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여우를 만났다. 그리고 그 점도... 그 점은 생각대로 독수리였다.     


다행히 독수리는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힘이 드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이 독수리가 우리들의 가이드예요. 좀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고 이곳까지  왔네요.


저는 이민섭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파랑새가 되었지만요.     


저는 안진주예요. 지금은 이렇게 여우가 되었지만요. 

기억들의 밤이 지나고, 가이드에게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지금은? 지금은 무엇을 하죠?     


이곳에 밤이 오고 있어요. 기억들의 쉬는 시간이죠. 기억들은 늘 움직이고 있거든요. 가만히 있지 못하죠. 그래서 아마 아주 짧은 밤일 될 거예요.       


그런데 이곳은 어디인데요?      


사람들의 기억이 모인 곳이지요. 아까 모자를 잃어버려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행복을 찾으러 갔다 했는데, 이곳은 좀 으스스한 곳이네요.     


맞아요. 아까 독수리 떼도 그렇고... 이 숲 속도 그렇고... 저 같은 파랑새가 있기에 너무 무섭네요.     


네, 이곳에서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모자는요? 모자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모자는 벌써 찾았어요.     


네?     


아까 독수리 무리에서 가이드가 모자를 찾아왔어요. 비록 삼키기는 했지만요.     


네에?     


괜찮아요. 가지고만 있으면 되거든요. 하하     

모자를 잃어버리는 것은 그냥 잃어버린다는 뜻만이 아니에요. 이곳에 오게 되면, 모자는 나에게 꼭 붙어있어요. 봐요. 지금 당신의 모자도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붙어 있잖아요. 그 사람은 모자를 일부러 떼어내려 했다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행복의 장면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지 못한 것에 실망을 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냥 모자를 버리고, 이곳에 있겠다는 뜻일 거예요. 그래도 이곳에 있게 할 수는 없어요. 이곳은 잠시 머무는 곳이 되어야 해요. 우리의 지금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그저 지금 나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과거로 잠시 여행을 가는 거잖아요. 지금도 미래도 없는 과거에 묻혀 있게 할 수는 없어요.      


행복이란 것이... 무엇인데요?     


진주 씨는 행복이...?     


나는 진주 씨에게 질문을 하려 했는데, 어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큰 부엉이가 눈을 꿈벅 대고 있었다. 


저를 도우러 오신 분들이군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이지요? 저는 행복의 의미를 찾지 못했어요.      


부엉이는 힘이 쭉 빠진 채, 얼굴을 한 바퀴 돌려대 다시 물었다.     


얼굴이 돌아가는 부엉이를 보는 나는 파랑새의 본능으로 숨을 곳을 찾고 싶었다.        

이전 07화 내 소설 탐방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