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효선 Mar 17. 2022

의존성 인격(성격) 장애

여전히 극복 중

인간은 의존적인 존재인가?

나는 스무 살 이후부터 오랫동안 의존성 인격장애 진단 기준에 거의 부합하는 성격으로 살아왔다. 실제로 정신과 병원에서 진단받은 것은 아니지만 성격심리를 공부하면서 내 증상과 너무 비슷해서 내가 이런 면이 있구나, 비 일관적이고 강압적인 양육태도의 영향이구나… 뭐 대충 이런 점들은 알 수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막연하고 극심한 불안, 우울, 그리고 중독. 당시에 견디기 힘든 불안의 고통을 덜기 위해 남자 친구와 술에 의존하고 집착했다. 

병을 앓고 있던 시기에 나는 정말 다리 없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 같았다. 자신의 두 발로 이 땅 위에 단단히 딛고 서있는 느낌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에게 그런 일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살려면 반드시 누군가 필요했다. 

우울한 기간이 너무 길어서 기분부전 장애를 의심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을 아주 못해낼 정도는 아닌데 삶을 사는 것 자체가 공포이고, 거의 언제나 깊고 어두운 물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사는 건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우울증, 불안장애 약을 먹어 보기도 하고, 힘들어도 살기 위해 억지로 산책도 하고, 운동으로 극복하려고도 했다. 상담도 받고 나름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이 병은 주로 우울을 병행하고, 낮은 자존감, 깊은 수치심과도 연관되어있다.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도록 내버려 두었고 왜 이렇게 주눅 들어 보이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은 매 순간 내 온몸과 마음을 휘감아 새카맣게 일렁이는 불안의 감정이었다. 그 뒤에 매달린 우울과 무기력은 어디를 가든 끈질기게 따라왔다. 그것들은 끈적하고 질퍽한, 너무도 무거운 진흙더미처럼 나를 뒤덮어 영원히 나를 놔주지 않을 거라는 믿음, 오직 죽음만이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는, 마침내 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다행히도 나는 엄청난 보호요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과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었고 그 세계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 덕분에 내 마음을 인지하고 성찰하고 통찰하는 능력이 높아졌고, 병적인 불안과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을 통해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감정들을 느껴주고, 흘려보내고, 위로하고, 감싸 안았던 과정-내가 만난 내면 아이, 과거 트라우마, 반복되는 안 좋은 패턴 알아차리기 등-을 나누고 싶다. 지금 너무 아픈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괴로움을 술로 잊으려 하던 시절에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않았다.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다. 2019년 11월 10일(날짜를 기억하는 게 좀 웃기지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술을 끊으면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책과 글쓰기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마음씨 좋은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아직도 나는 자주 막연한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다. 알코올 의존에서 카페인 의존으로 바뀐 점은 좀 낫다고 볼 수 있을까? 남자 친구에 의존하는 대신 책과 글에 의존하는 것은? 적어도 상대방과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긍정적인 변화다. 사실 이런 감정과 붙으면 매번 지는 싸움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주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남자를 만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나는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거나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냥 ‘쉽게’ 사랑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들 없이도 딱히 살아가지 못할 정도로 힘들지 않다. 술로 마비시켜야 할 만큼 극심했던 불안도 좀 나아졌고, 매 순간 애정을 구걸해야 할 정도로 텅 비어 있던 마음도 어느 정도 채워졌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독서모임만으로도 적당 부분이 채워진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여전히 버겁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하며 지낸다. 어쩌면 타인에게 애정과 보살핌을 줄 능력이나 에너지가 아직 부족한 걸 수도 있다. 사실 혼자 살아가기에도 벅차다. 나 하나 먹여 살리기도 힘들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힘은 너무도 위대해서 내가 완벽하거나 충분하지 않아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꼭 그 대상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서로가 가진 사랑을 주고받으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가능해지는 놀랍고 신나는 경험들 속에서 하루하루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전 09화 코로나 극복_자연의 정화능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