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짜리 샌드위치를 먹었다. 비싸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과분한 음식이라고 느꼈다.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거면 된 거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가게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먹지 않은 음식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먹기로 한다. 부유해서도, 내가 갑자기 그럴 자격이 있다고 느껴져서도 아니다. 그냥 그 정도로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는 동안 감탄했다. 맛있어서. 그리고 슬픔은 뒤로 밀려났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와 눈물을 흘렸다. 샌드위치가 벌써 다 소화됐나 보다.
외로움에 못 이겨 금주카페에 오랜만에 글을 남겼다. 금주 5년 차가 지났다고. 얼마 전에 술을 마실 뻔한 경험담과 백수가 됐고 여전히 혼자라는 것, 인생에서 유일하게 뿌듯한 것이 금주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외로우면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딱히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 난 사실 내 기분이 좋아지려면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럴 만한 게 정말 별로 없는지도 모른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 속 주인공이 짠해서 더 우울해진다. 너무 우울해서 책을 덮었다. 금방 다시 펴겠지만.
아까 잠깐 하늘을 나는 괴물에 대해 생각했다. 왜 하필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할 만하게 생긴 괴물의 모습이고 나만 그의 머리 위에 탈 수 있는데, 커다랗고 뾰족한 뿔이 머리 위에 나 있고 그 뒤로 등판처럼 살이 툭 튀어나와 있다. 내가 그 사이에 뿔을 꽉 잡고 앉으면 촉수처럼 등판에서 고무줄 같은 것이 나와 안전벨트처럼 내 배를 감싼다. 비행을 하고 오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괴물은 내가 사는 3층 건물 창문으로 갑자기 나타났다. 커다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괴물을 보지 못한다. 나는 아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이것이 모두 현실이고 괴물과 친구가 되어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끔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사람을 만나는 건 피곤하고 귀찮다. 텐션을 올려야 하는 것부터가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평상시 우울한 상태로 사람을 만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끌어올린 텐션으로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고, 공허한 웃음이 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오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더 강해진 외로움을 마주하거나 에너지를 다 써서 무기력한 상태가 되는 것 말고는.
뭐가 문제일까? 방 안에서 이렇게 우울한 글만 언제까지 쓰다가 죽을 텐가? 아, 그럴 수만 있다면. 뭐라도 써서 남기고 죽을 수만 있다면. 사실 내가 바라는 게 그거다.
몇 년 전 자살한 모 연예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 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나도 내가 자주 그렇다고 느낀다.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약하고 위태롭다. 하지만 난 어제도 살아남았고 오늘도 그럴 것이다. 아직 읽을 책도 많이 남았고 봐야 할 영화들도 있다. 그리고 써야 할 무언가도 있다. 아마도.
슬픔을 간직한 채 죽고 싶지 않다. 그러면 내 시체는 영영 축축할 거 같다. 불에도 타지 않을 것만 같다. 무엇으로든 다 쏟아내고 가고 싶다. 마음속에 자책이든 후회든 슬픔이든 뭐든 가두고 죽고 싶지 않다. 살아있는 한 그럴 기회들이 올 것이다.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나도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