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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상사와 부하는 인간관계가 아니다 - 1

관료제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by life barista

0. 리얼리티 100% 사례 ― 서울 깡통 기계 50대 공장장, 김 부장


김철수 부장(52세)은 자신의 팀을 '깡통 기계'라고 불렀다. 그에게 팀장은 깡통에 명령어를 채워 넣는 프로그래머였고, 팀원들은 입력된 값에 따라 덜그럭거리며 결과물을 뱉어내는 부속품이었다. 그에게 조직은 그저 커다란 공장 설비에 가까웠다.


월요일 아침 회의 시간. 김 부장은 스크린에 띄워진 엑셀 표를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로 툭툭 쳤다.

(그는 회의실에서 피우지도 못할 담배를 습관처럼 쥐고 있었다.)


"김 대리. 여기 C열 14행. 지난달 대비 도달률이 0.5% 빠져. 이유가 뭐야?"


김서준 대리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 그게… 지난주에 거래처 담당자가 갑자기 모친상을 당해서 미팅이 연기되는 바람에…"


김 부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모친상'이 '일정 지연'으로 들렸다.


담당자가 상을 당했으면 대타를 찾아서라도 진행했어야지.
그 회사는 그 사람 혼자 일해?
김 대리, 자네 요즘 나사가 좀 풀린 것 같아.


며칠 뒤, 늦은 밤 사무실.

야근 중이던 김 대리가 짐을 싸다 말고 김 부장 자리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며칠 못 잔 사람처럼 퀭했다.


"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짧게 해. 나 10분 뒤에 컨콜 들어가야 돼."


김 부장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키보드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저… 이번 프로젝트까지만 하고 퇴사하겠습니다.


그제야 타닥거리던 키보드 소리가 멈췄다. 그제야 김 부장은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김 대리의 얼굴을 봤다.

"갑자기? 왜? 갈 데 정했어?"

"아닙니다. 그냥... 좀 지쳐서요. 여기서 저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엑셀 빈칸 채우는 도구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도구?”


김 부장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 김서준. 짭밥 어디로 먹은 거야? 대한민국 직장인이 다 도구지, 그럼 뭐 예술가냐? 내가 너 쪼는 게 싫어서 그래? 너 작년에 고과 A 줬잖아. 덕분에 성과금도 더 받았고. 기름칠 꼬박꼬박 해줬는데 이렇게 퍼지면 어떡하냐?


김 대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부장님한테는 제가 기름칠하면 돌아가는 기계로 보이시겠지만... 저는 그게 너무 힘듭니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김 부장은 손목시계를 보며 손을 휘저었다.


"일단 알았고, 지금 감성 팔이 할 시간 없어. 너 지금 입사 5년 차 버그 때문에 고장 난 거야. 휴가 이틀 줄 테니까 가서 수리 좀 하고 와. 그때 다시 얘기해."


김 부장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김 대리가 뒤돌아 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김 부장은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수첩을 꺼내 메모했다.


김 대리 이탈 징후 → 대체 인력(부품) 탐색 필요. 인수인계 매뉴얼 업데이트 요망.


그는 김 대리가 왜 아픈지, 무엇이 힘든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잘 돌아가던 깡통 기계에서 덜커덩 평소와 다른 소리가 났다는 사실이 귀찮았다.



1. 관계를 '기능'으로 환원하는 현대 기업의 관료 조직


현대 기업에서 인간은 ‘누가 정해진 기능을 더 잘 수행하는가’로 평가됩니다. 상사의 관심은 팀원의 감정이나 고민이 아닙니다. 보고서 자료의 정확도, 프로젝트 일정표 준수, KPI 달성률 같은 기능의 결괏값이 제일 중요합니다. 즉, '인격적 존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기능적 성능'이 대신 차지한 것입니다. 이런 냉담한 관계는 단순히 김 부장 개인의 성격 결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속한 '관료제'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만든 어두운 유산입니다.


그렇다면 관료제란 무엇일까요? 관료제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사람을 이름이 아닌 ‘자리’로 부르는 방식은 이미 고대 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와 중국의 왕조는 세금·토지·인구를 관리하기 위해 전문 관료들을 두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이 가진 삶의 굴곡보다 문서와 절차에 따라 그를 처리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독교의 세계화에 맞춰 누구라도 같은 교리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표준화된 절차'는 개인의 상황에 따른 유연한 판단보다 "정해진 규칙"이 언제나 옳다는 믿음을 굳혔습니다. 결국 인간을 직분과 문서로 다루는 방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조직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관료제는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완성됩니다. 프로이센은 시험 성적으로 관리를 뽑아 정해진 자리에 앉혔습니다. 이들은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미명 아래 교과서대로 판단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영국과 미국에서는 수천 명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 군대식 지휘 체계(Command Chain)를 기업으로 가져왔습니다.


전쟁터의 장교들이 기업 관리자로 변신하면서 계급, 행동 매뉴얼, 보고 체계, 기능 평가가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기업의 조직 문화는 윤리적 판단과 행동보다, 돈을 버는 데 필요한 역할과 책임 중심으로 완전히 바꿨습니다. 김 대리가 느낀 비인간적 관계는 사실 수천 년간 쌓여 온 관료제로부터 전해 내려 온 유산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인간의 뇌와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점입니다.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들은 관료제가 인간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습니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지나치게 역할 중심으로 움직이는 환경이 구성원에게 ‘자기 소외(self-alienation)’를 일으킨다고 설명합니다. 내가 수행하는 '기능'과 나라는 '존재'를 혼동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뇌의 스트레스 회로가 과열되어 만성 피로와 정서적 무감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불안을 감지하는 편도체가 과하게 활성화되어 공감과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쉽게 말해, 관료제 시스템이 사람을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만드는 셈입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사회적 배제나 조직 내 소외가 생기면 뇌는 신체적 통증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인간이 무시당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신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전방 대상피질(ACC)’과 섬엽(insula)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는 여기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이용당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지 못한다’라는 묘한 마음은 단순히 기분 때문에 생긴 게 아닙니다. 뇌에게 이런 기분은 팔다리를 몽둥이로 두드려 맞는 것과 똑같습니다. 실제 폭행을 당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관료제 기업 조직은 우리의 신경계를 파괴하는 구조적 폭력입니다.


김철수 부장과 김서준 대리의 장면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어머니의 상(喪)을 이야기했을 때, 김 부장은 연민을 느끼는 대신 ‘일정 지연’에 따른 스트레스를 느꼈습니다. 타자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책임만 드러내는 전형적인 관료의 반응입니다. 김 대리가 "수리하고 오라"는 말을 듣고 느꼈을 모멸감은, 구타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 자체로 환영받지 못하고, 기능만 남은 조직. 그곳은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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