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액이 부족합니다'(기계음)
"어! 이상하다"
버스 요금 단말기에 연신 교통카드를 대던 초등학생이 하는 말이다.
단말기에는 잔액이 0원으로 찍혀 나온다.
"학생! 기계가 잔액이 없다고 그러는데."
읍내에서 엄마를 만나기로 하고 버스를 타고 나가는 길인데 버스카드에 충전된 돈이 없다. 그리고 엄마도 없으니 현금도 없단다.
" 차비 없으면 버스 그냥 타고 가자! 응? "
"그리고 내일이고, 모레고 돈 생기면 내! 알았지!"
울상이 되어버린 학생을 달래려고, 해보지도 않은 인자한 인상을 짓느라 얼굴에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
'언제 내가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았을까?'
기억이 가물가물 하였다.
비록 발 연기지만, 어린 학생은 시골 기사의 말대로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읍내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한 무더기의 승객을 내려놓고, 다음 행선지의 행선판으로 교체하고는 다음 노선으로 버스를 몰고 나갔다.
그날은 학교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 이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고 있었다.
4차선 대로를 건너서 야구공 하나가 떼구루 굴러왔다.
"야! 거기 공 좀 던져줄래!"
내 또래 되는 애들 서넛이 동네 골목에서 야구를 하다가 공을 반대편으로 보낸 것이다. 중학교 일 학년 치고는 덩치도 있었고, 뭐 던지는 데는 자신도 있었다. 공을 집어 길 건너 반대편 얘들 있는 곳으로 힘껏 던졌다.
'퍽'
길 건너편 자그마한 개인병원 2층 유리창에 공이 맞았다.
'쨍그랑'이 아니고, '퍽'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함께 공 주인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나 혼자만 닭 쫓던 개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상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그럴 수 없어!'
4차선 길을 건너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문을 열고 병원에 들어서니, 간호사가 나에게 물어본다.
"어디가 아파서 왔니?"
"그게 아니고 제가 유리창을 깼어요!"
"우리 유리창 깨진 거 없는데..."
"2층 이요!"
병원 2층의 유리창은 두겹으로 되어있고, 가운데가 진공처리된 유리창 이었다. 다행히 비어 있는 입원실로, 창고처럼 쓰는곳 이었다. 요즘에야 흔해졌지만, 40여 년 전에는 구경하기 힘든 상당한 고가의, 방음을 위하여 특수 제작된 두 겹 유리창이었다. 그래서 "쨍그랑"이 아닌 '퍽'소리가 난 것이었다.
자진납세하러 자기발로 병원에 들어온 온 중학교1학년 학생을...
그 병원의 모든 직원이, 기물을 파손한 어린 죄인을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하고 인질로 잡고 있었다.
그 중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 너! 저게 얼만지 아니? 그 비싼 걸 깨고 도망을 칠라고 해!"
"빨리 집에 전화해서 유리창 값 갚으라고 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불쌍한 어른이었다. 아마 그 병원 의사였던 것 같은데...
身分은 人格과 정비례(正比例)하지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덜 된 놈들 정말 많다.
다행히 집에 계시던 어머니가 오셔서 유리창값을 물어주고 인질은 풀려났다.
다른 노선을 한 바퀴 돌고 조금 전 노선을 다시 가려고 터미널 홈에 버스를 댔다.
"기사님!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거 드세요! "한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버스에 올라와 나에게 음료수 캔을 건넨다. 그리고 무임승차시켰던 초등학생의 버스요금을 돈통에 넣었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하!~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