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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민 Sep 27. 2022

남미는 처음이라서

스물셋. 코로나 이후 여자 홀로 떠나는 남미 여행

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왜 남미로 가?"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냥'이라고 답했다. 남미는 미지의 땅이었다. 가장 낯선 곳을 말하라면 남미와 아프리카를 말했다. 그런 남미가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살기.'

반복되는 일상 속 생활의 활력을 찾고 싶었다. 좀 더 말하자면,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되길 바랐다. 


여행, 공부, 사랑.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뭘까.

시작이 어렵다는 것. 처음은 열정과 설렘이 있다.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러나 미숙해서 마음대로 잘 되지 않기도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기대되면서도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 남미 여행의 시작. 무서움, 두려움, 설렘을 모두 안고 그곳으로 떠났다. 




비행기에서 꺼진 불들이 모두 켜졌다. 주위에 부산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눈을 천천히 떴다. '여기가 남미인가.' 배낭 하나를 메고 입국심사장으로 걸어가 직원의 질문에 답을 했다. 심사가 끝나자 직원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난 깜짝 놀라 "감사해요"라고 답하며 밖으로 나갔다. 


'미터기'가 없는 페루, 부르는 게 값인가!

 

페루 공항 입구는 아수라장이었다.

안전 요원들은 공항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밖은 수많은 사람이 택시 흥정을 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의 준비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한국 반대편에 있는 페루 리마에 첫 발자국을 찍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먹잇감을 찾는 좀비처럼 내게 달라붙었다.

 

"택씨?"

소음이 양쪽 귀를 메웠다. 선심쓴 것처럼 외치는 가격들은 택시앱보다 비쌌다. 흥정에 혼이 빠질 때쯤 앱으로 부른 택시를 놓쳤다. 


페루는 미터기가 없다. 부른느 게 값이다.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옆에 서 계시던 한 택시 기사. 진이 빠진 난, 앱 가격으로 흥정을 해서 기사를 따라갔다. 

"타!"

그는 금방 폐차해도 될 법한 오래된 차량 앞에서 멈췄다. 난 흠칫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 뒷좌석에 앉았다.



'빵빵' 소리로 메워진 도로


금방 충격을 먹었다. 중앙분리선은 도대체 왜 존재할까. 의문이었다. 모든 차는 제멋대로 도로를 달렸다. 바닥에 그어진 선들은 장식용인 듯했다.

"빵빵"

경적소리는 온 도로를 휘감았다. 오래된 차들은 독한 매연까지 뿜었다. 괜히 불안해서 안전바를 붙들었다. 기사는 다른 차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듯 경적을 울리며 레이스를 했다. 생존이 걸린 레이스. 손바닥에서는 식은 땀이 났다. 


페루의 중심지, 리마


페루의 수도 리마다. 차가 많지만 교통 인프라는 부족했다. 심각한 교통체증, 대기오염, 높은 사고율. 리마 도착 후 얼마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달라. 아무튼'

창문 너머 거리가 낯설었다. 전깃줄이 가득한 벽돌집들이 한 순간 바다로 전환됐다. 탁 트인 바다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게 처음인 풍경은 매 순간 다른 감정을 불러왔다. 

한편에는 달동네. 한편에는 부자동네


미숙한 나에게 더 차가웠던 도시의 첫인상


택시에서 내렸다. 겨울 페루는 쌀쌀했다. 괜히 사람들 표정도 차가워보였다. 리마 특유의 우울한 하늘이 한몫 더해져서 낯섦이 최고치를 향했다. 낯섦은 두려움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제 막 세상을 마주한 태아처럼 낯선 국가의 인상은 독했다.

겨울 페루 리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고팠다

페루의 해물볶음밥

"꼬르륵."


움츠린 어깨를 펴자, 배에서 소리가 났다. ‘이 상황에도 배고프다니.’ 가방을 멘 어깨도 아팠다. 주변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펼치자 익숙한 해물볶음밥(Arroz con Marisco)이 있어 반가웠다. 볶음밥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숟가락을 바로 얹었다. 


부스러지지 않는 밥알이 햇반과 비슷했다. 익숙한 음식은 안정감을 줬다. 걱정을 잊고 먹는 데 집중했다. 






들어갈 수 없으세요


"들어가실 수 없으세요"

"왜요?"

"마스크!!"


휴대폰 매장 앞에서 직원이 입구를 막아섰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마스크뿐. 실랑이 끝에 일반 마스크는 2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페루는 남미에서 최악의 코로나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다. 그만큼 강력한 마스크 정책을 펼친 것. 가방에 있던 마스크를 꺼내쓴 후, 말이 통하지 않는 직원에게 온몸을 동원한 끝에 유심을 샀다. 


주변에서 환전까지 하자 기진맥진이었다. 근처 호텔로 들어갔다. 다행히 방이 있었다.  호텔 방을 안내받아 침대 위에 눕자 안도했다. 낯섦이 주는 압박감에서 최초로 맛보는 편안함이다. 잠깐 머무는 호텔의 인위적인 향. 이전의 머문 사람들의 자취는 없었다. 잠깐 그곳의 사용자가 됐다.


'처음이니까.'

모르고 익숙하지 않았다. 두렵고 또 서툴렀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땅에 ‘처음’을 맞이했다. 처음은 항상 어렵고, 에너지가 많이 든다. 익숙하지 않아 서툴고, 꼭 잘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열정과 설렘이 있다. 또 다음번을 위한 발판을 만든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기대되면서도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다음 단계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갈 문을 다시 열었다.





*리마: 페루의 수도. 피사로에 의해 1535년 건설된 도시. 페루 전체 인구 30%가 거주하며 남미의 관문으로써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공항에서 도심가로 이동하는 방법

1) 버스(퀵 야마): 2시간마다 운영. 시간표 확인 후, 예약해서 탑승할 것!

2) 택시: 현금 필수. 공항에 있는 환전소의 페루 화페인 솔로 소액 환전할 것! 공항은 수수료가 비싸서 현금을 쓰고 싶지 않은 경우, UBER 앱을 통해 택시를 부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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