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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민 Sep 27. 2022

누구나 저마다 오아시스를 마음에 품는다

와카치나 사막에서 나누는 열정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야'(어린 왕자 中)

"목이 너무 말라요. 우물을 찾아봐요"
어림없다는 몸짓을 했다.
끝없이 펼쳐진 한복판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우물을 무턱대고 찾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는 피곤했는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자코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사막은 정말 아름다워요."
모래언덕에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 적막 속에 무언가 조용히 빛나고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렸을 적 읽었던 어린 왕자는 엉뚱했다. 자신의 별을 떠나서 세상을 여행하던 중 일곱 번째로 도착하게 된 별이 지구였다. 사하라 사막에서 사막여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왕자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사막 어딘가에 감춰진 샘물인 오아시스. 그에겐 어떤 의미였고, 나에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리마에서 와카치나로 망설임 없이 가게 된 이유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오아시스를 마음에 품는다


사막.

말만 들어도 살벌한 땡볕에 이글거리는 모래알로 하루에 몇 번씩은 목이 탈 것 같다. 그렇게 타들어가는 목구멍을 이끌고 마침내 도착한 오아시스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공간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사막이 없을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말이 한창 유행할 정도로 바쁨 권하는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갈증을 느끼는 듯했다. 무언가에 대한 갈증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도 물을 필요로 했다.


한줄기의 오아시스.

사람들은 저마다 사막에서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마음에 품고 있지 않을까?


생각에 늪에 빠졌을 때 창밖으로 알록달록한 작은 건물들을 발견했다. 이카에 도착했다. 또다시 택시를 타고 오아시스 마을인 와카치나로 이동했다. 햇빛이 쨍쨍한 사막의 모래들이 반짝였다. 매끈해 보이는 사막 표면에 발을 넣으면 블랙홀처럼 발이 푹 빠져 들어가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와카치나로 가는 길


재빠르게 사막을 마주할 준비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나는 바나나 호스텔. 너무 신난 나머지 머리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였다. 단숨에 멕시코 출신 룸메이트들과 대화를 나누고 버기 투어 예약을 하고 식사까지 마무리했다.

바나나 호스텔


"나 한국말 알아!! '칭구!'"

한국 드라마를 통해 배웠다면서 멕시코 친구들이 밥을 먹던 도중 말했다. 웃고 떠들던 우리는 재빠르게 친구가 됐다. 버키투어는 멕시코, 암스테르담, 핀란드,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과 함께 했다. 차 옆을 나란히 뛰는 개들과 함께 버기 탑승 장소까지 이동했다.


휘몰아치는 사막에 휩쓸려

와카치나 사막

"아아아아아악"

정신이 혼미했다. 가속도로 인해 몸의 중심을 잃을 것만 같았다. 소리를 지르면서 저항했다. 내 목소리에 엔진을 켜고 액셀을 밟았다. 방금 먹은 샌드위치를 토해낼 것 같았다. 내 샌드위치를 몸에서 지키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후렌치 레볼루션보다 몇 배는 더 빠르고 격렬했다. 나를 위한 외침으로 스트레스는 조각 나 사라졌다.


"내 샌드위치!!!!!!!!!"

상상과는 달리 버기 차는 모래 속에 빠지는 일도 없었다. 날렵하게 사막의 경사를 오르내리는 일명 버기 코스터.

튕기는 차에 엉덩이가 들썩여지고 입에는 모래가 들어왔다. 벌려진 입은 모래까지도 받아들이며 다물 생각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나를 따라 방금 먹은 음식들을 지킨다며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아무도 토하지 않았다. 그저 짜릿한 주행을 즐겼을 뿐이다.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니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보였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광활한 사막을 마주했다. 실감 나지 않았다. 거대한 사막의 모래가 눈에 빨려 들어왔다. 눈을 뜨기 힘든 버기 차 안에서는 한 손은 안전바를, 한 손은 선글라스를 있는 힘껏 쥐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안전바를 잡던 손이 흐물거렸다. 그쯤 버기는 사막 한가운데 멈췄다.

"칭구! 거기 서 봐!"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었다. 햇빛이 강렬했던 와카치나 사막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품었다.

'여기서 길을 잃는다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푹푹 밟히는 사막은 나의 신발을 집어삼켰다. 작고 작은 모래알들은 신발 안에 박혔다.

'여기서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을까?'

한걸음 떼기도 힘든 사막에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짜릿한 샌드 보딩

'와 높다. 샌드 보딩 타다가 죽은 사람은 없겠지?'

수많은 가능성을 떠올렸다. 샌드보드의 면을 미끄럽게 문지르면서도 걱정을 했다. 내 앞의 친구들은 겁도 없이 내려갔다. 나도 따라 용감한 척을 했다. 무서운 티를 감추고 얄팍한 용기를 부여잡았다. 비장하게 누워서 보드의 앞을 잡고 다리를 쭉 폈다.

"칭구! 칭구! 칭구!"

뒤에서 멕시코 친구들이 웃으면서 응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맹한 척하면서 엄살을 가슴 깊숙이 넣어두고 저 멀리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셋!"

"아아아악"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질렀다. 모래 사이를 가르면서 가파른 절벽을 내려왔다. 두려움을 극복한 성취감은 즐거움이 되었다. 사막에 살고 싶지는 않지만 샌드보드는 가끔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길을 만들며 절벽을 가로질렀다.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다양한 모습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후 우리는 4개의 절벽을 더 가로질렀다. 모래가 뭉터기씩 내 신발에 안겨 들어왔다. 모래와 일심동체가 되어서 나중엔 걷다가 드러눕기까지 했다.


와카치나의 노을



"버기 차 타세요!"

다시 시작된 버기 코스터. 시간은 벌써 노을이 질 때가 됐다. 아름다운 노을은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주황빛 모래알들이 비친 일몰은 환상 같았다. 


"예쁘다!"

아름답다는 감탄사로 소리를 지르면서 버기를 탔다.


황금빛 노을. 앉아서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과 노을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노을 지는 시간은 다정했다. 





숨겨진 샘물. 오아시스를 마주하다

하얀 달이 떠올랐다. 올라가야 하는 전망은 너무도 높고 가파르게 보였다.

'쉽지 않은데?'

숨을 가삐 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밟는 대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다시 내려가지는 사막의 모래들이 원망스러웠다. 경사는 얼마나 가파른지 발을 디디기도 쉽지 않았다. 모래 속으로 빠져드는 발을 털어내면서 다시 한 발자국을 뗐다.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

땀은 흘렀고 다리는 풀리기 시작했다. 이판사판으로 두 팔과 두 발을 모두 사용해서 기어갔다.

'찾았다. 오아시스!'

결국 끝은 있었다. 드라마틱한 풍경이 펼쳐졌다. 사막 속 오아시스는 존재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단박에 생텍쥐페리의 말이 이해됐다. 어딘가에 이렇게 빛나는 샘을 숨기고 있기에 사막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거였다.





절경이었다. 하늘은 색을 바꾸면서 시간의 흐름을 알렸다.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등.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하늘은 층을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했고 그것을 한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됐다.


"와카치나 오길 참 잘했어."

계획에 없던 와카치나 사막이었다. 페루의 휴양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음에 평온을 선물했다. 밤이 어두워지자 오아시스 마을의 불빛은 반짝이며 사람의 숨결을 알렸다.


투어를 함께한 멕시코, 스페인, 미국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밤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갓 지은 밥처럼 자신 이야기에 따끈따끈한 감정을 풀어냈다. 

여행은 다양한 감정을 우러나오게 했다. 감정은 세상을 살아가도록 힘을 주지만 세상 일들에 치여서 묻히기도 했는데. 사막 속 오아시스는 잃어버린 감정, 잃어버린 휴식을 되찾도록 도왔다.

오아시스의 샘물은 검고 윤기가 흐르는 강물의 흑진주처럼 빛났다.




“바쁨은 어쩌면 불안에 대한 일종의 방어 아닐까?’

[사실, 바쁘게 산다고 OOO해결되진 않아]라는 책에서는 바쁨이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라고 했다. 그 책은 또한 시간관의 조절, 권태, 사색, 놀이 등은 나쁜 바쁨을 파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막은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했다. 바쁜 사막 사회 속에서 각자의 리듬에 맞춰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발견하기를 소망했다. 그 오아시스는 삶이 아름다운 이유이자 나쁜 바쁨을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마에서 이카로 가는 법

Javier Prodo 터미널에서 ‘Cruz Del Sur’ 버스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현지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예약이 가능하다. 터미널에서는 터미널 이용료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이카

흐르는 ‘이카’라는 강에서 유래된 이 도시는 페루의 오아시스인 ‘와카치나 마을’로 유명하다. 이카 터미널에서 내려서 택시를 10분 정도 타면 와카치나 마을로 이동할 수 있다.


*버기 투어 예약 방법

머무는 숙소, 가는 길의 택시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버기 투어를 바로 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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