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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민 Sep 27. 2022

첫인상을 따뜻하게 녹여준 리마

처음의 힘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위험해." "살아서 보자."

주변 사람은 '치안'을 걱정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지기 위해 2가지 원칙을 세웠다.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않기와 빈민촌 가지 않기다. 이 두 원칙하에 다녀온 남미는 꽤나 안전했다. 


치안이 불안한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빈부격차'를 이유로 꼽았다.

"양들은 언제나 온순하고 아주 적게 먹는 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양들이 너무나도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까지 잡아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양들은 논과 집, 마을까지 황폐화시켜버립니다."
-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중


뿌리가 깊다. 스페인의 지배할 때 원주민은 땅을 가질 수 없었다. 농작물은 모두 지배자의 소유, '열심히'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가난을 대대손손 물려받았다. 오랜 시간 쌓인 문제는 바로잡기 어렵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은 좌절을 불러오고 몇몇은 범죄에 빠졌다. 사회는 얽히고 설켜 끊임없이 도는 뫼비우스의 띠 같았다. 


부유와 가난.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최첨단 기술과 화려한 복합쇼핑몰부터 수도조차 나오지 않는 집까지. 몇 블럭 차이로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미라 플로렌스 지역은 살기 좋고 안전하다는 평이 가득했지만 구시가지나 공항 주변은 위험하다고 했다. 


부유함의 상징. 미라 플로레스(신시가지)


여유가 넘치는 케네디 파크

'평화롭다. 여유롭다.'

이런 문장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부유한 신도시 느낌. 고급스러운 빌딩과 아름다운 공원이 자리잡았다. 


'나른하다. 따뜻하다.'

케네디 공원은 알록달록 꽃들이 가득했다. 리마가 페루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 장소.


한눈에 봐도 '공포, 범죄'와는 거리가 멀었다.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연인과 노인, 가족들이 소중한 시간을 쌓았다. 평온하게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조깅을 하기도 했다.




복합쇼핑몰에서 보이는 바다



'저녁 노을. 황홀하다.'

바다가 보이는 복합쇼핑몰 Larco mar.


절벽을 타고 내려다 보이는 넓은 바다는 환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식사를 하고 쇼핑을 즐겼다. 쇼핑몰 주변 공원을 산책했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양면을 볼 수 있는, 구시가지

오래된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

구시가지로 향했다. 도착하니 경찰이 보였다. 예사롭지 않았다. 연식을 알 수 없는 낡은 버스에 사람이 꽉 차있었다. 구시가지의 첫인상은 신시가지와는 반대였다.


"도와주세요."

햇볕에 그을린 얼굴, 수염이 길게 자랐고 어깨에 외투를 대충 걸친 사람. 굳이 아프다는 말이 필요 없는 총체적인 질병을 앓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 탄핵"

한편에서는 정치의 부정부패를 외쳤다. 페루는 긴 정치 분쟁의 역사가 있었다. 공화국 초기 군사 지도자들의 권력다툼, 대공황 시기 정치 분쟁 등. 역사를 거치면서 각자가 생각하는 부패와 싸워왔다.




페루 치안이 심각해졌다는 뉴스 보도. 코로나, 부정부패, 빈부격차. 복잡한 사회라는 퍼즐은 어렵기만 했다. 흩어진 조각조차 찾기 어려웠다.


스페인의 흔적이 가득한 아르마스 광장

아르마스 광장

아르마스 광장. 유럽과 동남아 느낌이 물씬 풍겼다. 몰린 사람들 사이로 대통령 궁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했다. 군악대가 연주하는 모습, 걷는 모습은 장엄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남미 도시들은 모두 비슷한 콜로니얼 도시 모형을 지녔다.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정부 종합청사, 대성당, 시청사 등의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쌌다. 



근위병 교대식

'페루 대성당에 스페인 사람인 피사로 시체가?'


대성당 안에는 스페인 출신의 정복자 피사로가 잠들어 있었다. 그는 남미의 강국이던 잉카 제국을 정복하고 현재 페루의 수도인 리마를 건설했다. 


그는 가장 먼저 대성당을 지었다. 정복자이자 건설자인 피사로는 자신이 지은 대성당에 잠든 것이다. 리마 대성당은 웅장한 외관만큼 내부도 화려했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노점상은 페루의 장신구, 골동품, 수공예품을 판매했다. 북새통인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악사, 팬터마임 등 다양한 행위가 펼쳐졌다. 화기애애한 소리가 들려왔다. 궁금증에 가게를 기웃거렸다. 호스텔 워킹투어. 서로 여행객임을 감지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이요! 이게 뭐예요?"

"호스텔 워킹투어인데, 같이 하실래요?"

"아리바 아바호 아센트로 바덴트로! 살룻!"(건배사)


얼떨결에 건배사를 같이 외쳤다. 술은 거절했다. 모르는 사람이 준 술에 수면제가 있어서 위험했다는 일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방금 산 잉카콜라를 마셨다. 마운틴듀와 박카스 맛이 오묘하게 섞여났다.


남미 1년 여행 온 노르웨이 친구, 방학에 놀러온 미국 의대 커플, 레바논 교수, 여행 온 영국 친구.


대화를 나누다 워킹투어를 바로 신청했고 미라 플로렌스로 함께 이동해 저녁을 먹었다.

페루식으로 유명한 세비체와 치차론을 주문했다. 엄청난 옥수수 크기를 자랑하는 세비체는 시큼한 국물의 맛이 오묘했다. 돼지껍질을 튀긴 요리인 치차론은 바삭했다. 모두 낯선 땅을 밟았다는 동질감으로 여행의 설렘을 읊었다. 


낯선 땅 페루. 집에 가는 길의 웅장한 건물 사이로 비친 일몰은 차가웠던 페루의 첫인상을 녹여주었다. 

노을이 지는 페루 리마


긴 하루가 끝났다. 하루 끝에서는 길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세수를 하다가도, 양치를 하다가도 떠올라 피식 웃었다. 잠깐의 후유증 같던 기억들은 나중엔 그리움이 됐다. 


길을 헤메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길을 잃든 잃지 않든 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일명 '맨땅의 헤딩'으로 시작한 여행. 그 강렬한 추억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첫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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