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여행하다
비슷해. 그런데 사람 소리 나서 좋더라.
시장에서는 흥정하는 소리, 웃음소리, 밥 먹는 소리, 전화받는 소리가 난다. 사람 사는 소리이다.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의 소음들이 만들어졌고 모두 당연하게 그 속에서 살아 숨 쉬었다.
코로나 이후 변한 세상에서는 사람 소리 듣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한동안 사라졌던 숨결이 다시 꿈틀거렸다. 작아졌던 숨소리는 살아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일상 속 숨소리는 일요일만 열리는 산텔모 시장에도 가득 찼다. 사람들의 소리는 어느 다른 시장과 비슷했다.
나도 산텔모 시장 처음 가봐!
스카이 다이빙장에서 친해진 브라질 친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몇 년간 살고 있었지만 산텔모 시장을 처음 가본다면서 설레 했다. 익숙한 것들로만 가득 찬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시도하는 건 주변에서도 가능했다. 복작복작한 시장을 그리며 우리는 길을 걸었다.
입구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골동품들, 수공예품들 뿐만 아니라 갖가지 계절 과일, 다 열거할 수 없는 먹거리도 가득하다. 사람 소리, 음식 냄새,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바사삭"
나뭇가지 모양의 초콜릿이다. 구멍이 송송송 뚫린 초콜릿은 바사삭 입안에서 씹혔다. 주전부리를 입에 물고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길게 늘어진 줄을 서서 눈을 사로잡은 음식을 주문하고 사람의 손길을 타고 받는다. 시장 상인들의 표정은 정과 희망이 넘쳤다. 넘치는 에너지와 성실함을 담고 있는 태도는 그들의 일상을 비췄다. 사람 사이에 숨 쉬는 상인들의 표정은 한 폭의 따뜻한 그림 같았다.
일주일에 단 하루 열리고 닫는 장에 상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저 많은 물건을 짊어지고 나왔을까?
야외에는 골목 하나가 통째로 시장이 되어 노점들이 즐비해있다. 어떤 생각과 함께 길을 나섰을까? 우리가 쉽게 걸음을 옮기면서 구경하는 거리에는 누군가의 땀과 노력들이 들어 있다. 희망을 가지고 빚어낸 정성들은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다. 독특한 물건들, 고풍스러운 액세서리, 수제 공예품 등.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 예술이었구나'
물건만이 아니다. 사람들도 예술을 펼쳤다. 길거리 곳곳의 밴드, 거리의 악사, 마술사, 탱고를 추는 사람들 등. 다양한 몸짓은 길거리를 메웠다. 홀로 서 있지 않은 그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고 무수한 발자국을 남겼다. 어떤 행위라도 허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삶은 정해진 길이 없다는 듯이 발자국을 지우고 남기기를 계속했다. 수선스러운 거리에서 나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맥주 추천해주세요!"
가게로 들어섰다. 잔뜩 신이 난 둘 사이에는 추운 겨울에서도 따뜻한 물소리가 났다.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는 각자의 문화, 연애, 나라에 대해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했다.
사람이 모여드는 저녁 식탁
기분 좋게 도착한 한인민박에선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소시지인 초리소와 빵이 어우러진 초리판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면서 티본스테이크를 굽는다. 도란도란 식탁에 앉아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한 잔 하면서 말소리를 나눴다. 깊어가는 밤과 함께 그들의 삶의 일부를 귀중하게 귀에 담았다. 정성스러운 한 상과 사람들의 말소리는 어우러져 마음의 빈칸을 채워주었다.
사람 소리가 좋았다. 정을 나누는 상인과 장을 보러 오는 친숙한 사람들이 모인 시장에서 이 도시의 일상을 맛보았다.
아침 일찍 눈을 떠서 희망과 함께 물건을 짊어지고 나온 상인들.
아침이면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는 주민들.
넘치는 정만큼 음식을 담아주는 사람들.
자신만의 몸짓으로 다양한 삶을 표현하는 사람들.
돌이켜보면 여행에서 의미 있던 기억은 사소했다. 타인의 호의가 가득했던 따뜻한 표정이라던지, 인사를 건넬 때 지은 예쁜 미소라던지, 사람의 말에서 느낀 배려라던지. 떼려야 뗄 수없는 관계라는 고리에서 세상이 생각보다 다정해보이는 하루였다. 향긋한 사람 냄새는 소소하지만 편안한 향기로 위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