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돌림노래로 전해요

by 은혜은


1호, 2호, 남동생, 3호, 나.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에게 받은 '등교준비합격증'을 목에 둘둘 감고서 집을 나선다. 며칠 매섭게 춥더니 오늘은 좀 포근하다. 학교까지 걷는 길이 수월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시작이 좋은 날이다. 쫄래쫄래 한 줄로 서서 찻길을 따라 걷는다. 마을 초입의 버스정류장 앞에 다다르니 버스가 서있다. 우리 마을은 이 버스가 다니는 노선의 종점이다. 그래서 정해진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을 때는 버스기사님이 버스에서 내려 몸을 쭉쭉 펴며 체조를 하기도 하고 버스 유리창을 닦기도 한다. 따뜻하게 풀린 날씨가 기사님도 반가웠나 보다. 버스에서 내려 버스 주위를 돌며 걷고 있던 기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어, 어떡하지. 눈이 마주쳤는데 인사를 해야 하나? 모른 척 지나가야 하나?'

낯선 기사님과 갑자기 눈이 마주치니 당황스럽다. 아는 마을 어른이면 인사를 할 텐데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렇고. 나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1호 언니가 앞만 보고 쭉 걷길래 나도 그냥 모른 척 지나간다. 마음이 살짝 불편해진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를 시전 하며 걸음을 더 씩씩하게 옮긴다.


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 높은 둑방 위에 놓인 다리에 올라선다. 들에서 부는 바람, 강 따라 부는 바람. 모든 바람이 모여드는 다리 위는 포근해진 날씨에도 춥다.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걷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릉거리는 차소리가 들린다. 버스가 출발하나 보다. 다리 난간 끝으로 더 붙어선다. 큰 버스의 덩치를 생각하며 옆으로 최대한 바짝. 그런데 분명 잘 지나가라고 한쪽으로 비켜선 건데 버스가 지나가진 않고 갑자기 멈춰 선다. 우리 바로 옆에서.

갑자기 멈춰 선 버스에 나란히 걷던 5남매 고개가 동시에 홱 버스를 향해 돌아간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처럼 '뭐지?' 하는 물음이 서로에게 들리는 것 같다.

덜컹거리며 멈춰 선 버스의 문이 철컹하며 열린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기사님이 우릴 보고 말씀하신다.

"얘들아, 타. 학교 가는 거지? 저 앞에서 세워줄게."

'어! 어......!'

찬바람 부는 다리 위에서 갑자기 만난 행운에 놀란 우리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이건 뭐지?' 싶다.

'차비가 없는데 어떻게 타지? 타도 되는 건가?'

생각들이 꼬물거리며 지나가는데 기사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그냥 타. 괜찮아. 저 앞에서 내려줄게."

재차 하는 말씀에 그제야 1호 언니가 움직이고 뒤를 따라 한 명씩 버스에 오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긴장해서 발은 삐거덕거리지만 입은 할 일을 잊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1호 언니를 시작으로 '감사합니다'가 다섯 번 연이어 울린다.

얼떨결에 만난 행운에 얼어붙은 우리는 의자에 앉지 않고 뒷문 근처에 빼곡히 모여 선다. 금방 내려야 하기도 하고 공짜로 얻어 탄 버스라 왠지 서서 가고 싶다.


학교가 있는 옆 마을까지는 한 정거장 거리다. 걸으면 한참이지만 버스로는 정말 순식간에 도착했다. 덜커덩 버스 뒷문이 열리고 높은 계단을 내려서며 우리는 또 한 번 돌림노래를 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탈 때보다 긴장이 좀 풀어진 인사들이 쏟아진다. 우리가 안전하게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기사님께 목소리 크기로 감사를 전한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덕분에 기분이 좋아져서 오늘 모든 일이 다 잘될 것 같아요.'

긴 말은 생략됐지만 기사님께 제대로 전달 되게 마음을 담뿍 담는다.

버스 덕분에 학교까지 거리가 절반은 줄어들었다. 아직 갈길이 남았지만 학교 교문 앞에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기운이 넘친다. 바람에 얼었던 볼도 기분 좋게 상기됐다. 걸음도, 목소리도, 눈도 반짝반짝한다. 1호 언니부터 막내까지 모두 그런 걸 보면 기사님이 '톡' 던져준 작은 행운의 효과가 눈부시다. 기사님도 우리 인사 덕분에 하루가 마법처럼 반짝거린다면 참 좋겠다.


학교를 향해 걷는 길. 안 그래도 포근했던 날씨가 더 따뜻해진 것 같다.

다음에 아저씨랑 눈이 마주치면 꼭 인사를 해야겠다. 아저씨는 이제 아는 사람이니까.

이전 04화경로이탈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