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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뜐뜐 Aug 23. 2021

소개팅_05

다섯 번째 이야기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처리해야 할 업무는 산더미인데, 모든 신경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무작정 사무실을 나와 시동을 걸었다. 핸들의 방향은 자유로로 향하였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헤이리 예술마을까지 오게 되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답답할 때 종종 이곳에 들려, 내 마음을 달래 보곤 한다. 평일 낮 헤이리 마을에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다. 카페에 앉아 커피 향에 취해 홀로 노트북을 껴안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그런 부류. 다들 마음은 복잡해 보이지만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나도 그들 속에 섞여 커피 향에 잠시 기대 보았다. 어제 일이 꿈만 같아서, 아직 깨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 지금 까지도 미세하게 떨려오는 진동을 간직한 채,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잠시 도피를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렇게 어제 하루를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테라스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배경 삼아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밤바람에 취해, 맥주에 취해, 그리고 그녀에 취해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시덥지 않은 나의 과거에 대해 그럴싸한 포장을 곁들여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증명을 했다고 할까. 생각해 보면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준 그녀가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데, 마음도 예쁘고 사려도 깊다니. 이렇게 생각이 연결될 줄은 몰랐다. 그녀의 작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는 잔잔한 호수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나에게는  울림이 되었다. 아직 그녀가 어떤 사람지는  모르겠지만, 예쁘다는 것은 확실했다. 얼굴도, 마음도, 성격도 나에게 그녀는 모든 것이 예쁜 사람이었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한다며 운을 띄었고, 아쉽지만 알겠다며 자리를 정리했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두 다리를 질질 끌고 택시를 잡으러 큰 길가까지 나왔다. 내심 세상에 있는 모든 택시가 파업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갑자기 전쟁이 나서 둘이 급하게 도피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길 그런 소망을 간직하던 찰나, 눈치 없는 택시가 바로 잡혔다. 나는 황급히 잘 가라며 인사를 건넸고, 그녀도 가벼운 인사를 남긴 채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그녀의 택시 뒷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쳐다보다가, 말로는 주체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이 나를 편의점으로 이끌었다. 냉장고를 열고 적당한 캔맥주 하나를 잡아들고 편의점 테라스에 앉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무엇을 위한 갈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탄산 가득한 맥주는 나의 긴장을 금세 풀어 버렸고,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한 마음에 알콜을 부었더니 무서울 게 없었다. 취기를 빌려 나도 용기라는 것을 내볼까 한다.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하루 종일 그녀에게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용기가 나질 않아 결국 말하지 못했는데, 정말 너무 예쁘시다고. 노세범 파우더의 문구와 내 마음은 같다고 상기시켜줬다. 카톡창의 1은 사라졌고,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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