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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뜐뜐 Aug 27. 2021

소개팅_07

취향

지나치게 가벼웠던, 아니면 지나치도록 무거웠던 그런 순간들이 있다. 한쪽은 너무 뜨거웠고, 아닌 다른 한쪽은 냉소적인 그런 관계.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도 존재했다. 20대 때 나는 관계에 있어서 매번 이기적이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든 상관없이 나는 내 마음만 전달했다. 내 기분이 중요하고, 내 상황이 우선이었다. 관계에 쉽게 지치며, 혼자 있기를 선호했다. 관계를 끝낼 때도 문자로 통보하고, 걸려오는 상대방의 목소리도 차단했다. 핸드폰에 쌓인 부재중은 30통이 넘어갔지만, 상대방의 기분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깜깜한 방 안에 홀로 영화 보기를 좋아했고,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는 것을 자유라고 칭하였다. 내가 만든 나만의 성안에서 그렇게 나는 홀로 주인공이 되었다.


누군가는 걸리적거렸지만, 그렇다고 혼자 있자니 외로웠다. 타지 생활이 주는 허전함은 나에게 다시 외로움을 선물했고, 거울 속 내 눈에서도 슬픔이 보였다. 결국 또다시 누군가를 찾아 헤매었고, 이런 쳇바퀴 같은 연애의 결말은 항상 같은 엔딩으로 끝났다. 상처를 주고받고 자책하고 미워하고 결국 헤어지고. 연애를 머리로 이해하려 했던 나는,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정말 사소한 하나까지에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설령 이해한 척 넘어갔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해한 척이었다. 연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큰 다툼으로 번지고 말았다. 이런 연애 속에 머물다 보니 어느덧 나는 서른이 되었고, 더 이상 연애는 사랑과 열정 따위와는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은 소개팅으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마치 10대 사춘기 소년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도 심장이 쿵쿵거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쿵쿵거리는 심장은 저녁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심장을 움켜 잡으며 하루 종일 웃고 있는 나는, 정말 이상해졌다.




멀리서 그녀가 나에게 오고 있다. 반사적으로 차문을 열고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줬다. 차에 탄 그녀는 내가 준비한 아메리카노를 발견하고, 커피 마시고 싶었는데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에티오피아에 있는 커피 농장을 사서 세상에 있는 모든 커피를 전부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흥분된 마음을 겨우 가라 앉히고, 기분 좋게 차는 출발했다. 옆자리에 있는 그녀가 아직은 어색하지만, 어색한 이 떨림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대화가 잠시 끊기고 둘만의 공백이 찾아왔다. 순간 오디오에서 Maroon5의 Nothing Lasts Forever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던 노래지만, 유명하지 않은 곡이기에 홀로 간직하던 곡이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있는 그녀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녀도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다. 순간 마음이 몽글몽글 이상했고, 그녀도 다른 공간에서 나와 같은 음악 속에 살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두 사람의 취향이 같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음악, 영화, 책 그리고 특히 음식 취향이 비슷하다면 더 이상 바랄게 무엇이 있을까.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따위는 둘의 관계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너와 내가 다름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녀와 나는 고작 노래 한곡 취향이 같았지만, 우리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취향이 같았던 거다. 의미는 이렇게 부풀려졌고, 부풀릴 수만 있다면 더 부풀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들어맞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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