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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뜐뜐 Sep 05. 2021

소개팅_09

고백의 국룰

친구들과 동네 횟집에서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소개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안 그래도 저번 주에 소개팅을 하고 왔다고 이야기를 했고, 모두 동시에 예쁘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소주를 잔에 따르며 소개팅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소개팅을 정말 많이 해봤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며, 그래도 자기들 한테 궁금한 건 다 물어보라고 한다. 그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상대는 얘네를 절대 만나주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뭐 딱히 다른 대안은 없었다.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었고 그렇다고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볼 수도 없고. 유학 시절 친구 소개로 그녀와 처음 소개팅을 하게 되었고, 소개팅 후 연락을 했는데 처참히 씹혔고, 갑자기 어느날 그녀에게 연락이 와서 한 번 더 만났고, 그리고 이번 주말에 세 번째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했다. 다들 이야기를 곰곰이 듣더니, 세 번째 만남에는 무조건 고백을 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너무 오래 끓여 바짝 쫄아가는 매운탕 냄비 바닥을 긁으며 왜 세 번째 만남에 고백을 꼭 해야 하냐 물어봤고,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이게 룰이라고 한다. 흔히들 말하는 국룰이라고 할까. 그중 한 명이 말하기를 소개팅을 해서 만난 남녀는 서로 마음이 있으면 두 번째 만남을 가지고, 세 번째 만남까지 가진다는 것은 서로 호감이 있다는 게 틀림없다고 한다. 그리고 세 번을 만났는데도 남자가 고백하지 않으면, 여자는 남자가 관심이 없다고 판단하고 마음을 접을 수 도 있다고 한다. 듣고 보니 묘하게 일리가 있긴 했다. 그녀가 정말 나에게 마음이 있어서 세 번째 만남을 약속했을까, 아니면 아무 이유 없이 심심해서 연락한 걸까. 섣불리 고백을 했는데 그녀의 마음이 아직 아니라면 어떡하지. 나는 곁에 두고 오래 봐야 매력 있는 타입인데, 이런 단기전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이 불안했다. 앞에서 발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얘네 말을 믿어도 되는 건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반쯤 남아 있는 잔을 조용히 마저 비웠다.




그녀와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왔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어둠이 찾아왔다. 산속이라 그랬는지 어둠은 평소보다 짙었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지 하게 되는 그런 분위기랄까. 드문 드문 서있는 노란빛 가로등을 등대 삼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둠에 숨어버린 계곡은 시냇물 소리로 존재를 알렸고,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르겠는 개구리들의 함성은 비교적 잔잔하게 들려왔다. 평소에 의지하던 시각보다는 청각에 의존하다 보니 신발과 비포장 흙길의 마찰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고, 바닥에 설령 돌이라도 있을까 봐 그녀를 자연스럽게 부축해 주었다. 허공에 멀뚱멀뚱 흔들리는 손을 그녀 손에 포개 볼까 고민을 했지만, 아직 용기가 없었다. 내 손등과 그녀의 손등이 자꾸만 스쳐 지나가,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그녀에게 오늘 고백을 하려 마음을 머금고 나왔고, 몇 번의 타이밍이 왔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 머물다, 어느덧 차에 도착을 했다. 그래도 그녀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기로 했으니 다음 기회를 노려볼까 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티맵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그녀에게 나의 카페 취향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내심 떨리기도 했다. 혹시나 너무 촌스럽거나 커피가 맛이 없으면 그녀가 나의 취향을 오해할까 봐 조마조마한 그런 기분이랄까. 차는 출발 했고, 음악은 잔잔히 흘러나왔다.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이 창문에 비쳤다. 그녀의 표정은 알 수 없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느낄 수 없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침묵 속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고 그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그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까 나는 자꾸만 추측을 하고 있었다. 고백의 순간은 점점 다가왔고, 내 머리는 점점 복잡해졌다. 만약 오늘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몇 번 더 만날 수 있을 거고, 좀 더 확실한 타이밍에 내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목적지에 곧 도착한다고 말하는 티맵에게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페는 이미 눈앞에 보였고, 넓은 주차장에 어느덧 주차를 하게 되었다. 테라스가 넓은 카페였고, 어둠 속에 한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물 비릿한 냄새로 한강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조명이 최대한 어둑한 테라스 자리를 선택했고, 테이블과 의자에 맺혀있는 이슬을 휴지로 닦아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카운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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